[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오판(誤判)도 판결(判決)이다. 확정되면 더 이상 다툴 수 없고 그 결과는 결정적이다. 개인은 물론 사법역사의 흠이고 상처다. 제심제도는 이런 흠과 상처를 치유한다. 재심 대상의 대부분은 수사기관의 불법수사와 감금, 기소로 인한 억울한 옥살이다. 당연히 무죄를 받거나 공소기각 되어야 하지만 역대 민주주의와 인권의 암흑기에 사법부는 침묵했다. 때문에 재심제도는 사법부의 양심을 이끌어내는 종(鐘)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사법부는 재심제도를 통해 여러번 양심을 되찾았고 또 되찾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재심제도가 본질적 기능을 침해받고 있다. 검찰은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 둘 중 한 건에 대해 불복하고 있다. 법원은 재심결정에 너무도 긴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당사자 중에는 재심결정의 무죄확정을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이도 있다. <뉴스토마토>에서는 이런 재심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건전한 대안을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검찰의 법원의 재심결정에 대한 불복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실의 발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한 준사법작용이 아니라 관행에 가깝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시국사건에 대한 불복 건수가 많다.
<뉴스토마토>가 10일 대법원의 협조를 얻어 200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7년간 전국 지방법원(지원 포함)과 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재심 시국사건(계엄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 긴급조치위반, 반공법위반, 외환의죄,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검찰이 불복한 사건이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심 첫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462건 가운데 검찰이 항소 또는 상고한 건수는 총 103건으로 전체의 22.29%를 기록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항소가 불가능한 긴급조치 관련 사건 278건을 제외한 184건 가운데 검찰은 92건에 대해 항소하거나 상고했다. 불복률이 50%로 두 건 중 한 건은 불복한 셈이다.
◇48년만에 무죄 '인혁당 사건' 검찰 상고로 계류 중
검찰이 상고한 재심사건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은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유죄의 형이 확정된 지 48년만인 지난해 무죄로 선고됐으나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이 사건이 서울고법에서 지난해 무죄로 뒤집히자 상고했다. 사건 당사자들은 형이 확정된 지 48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다시 마음을 졸이며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故 박노수 교수와 김규남 전 민주공화당 의원 사건과 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조총련 간첩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도 재심에서 무죄로 선고난 지 닷새만에 상고장을 냈다.
법원의 재심결정에 불복해 항소 또는 상고된 사건들을 분석해보면 검찰의 재심 무죄사건에 대한 불복은 몇가지 유형으로 집약된다.
일단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사건과 유사한 판단이 예상될 때 검찰은 불복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檢 "죄질 안 좋아..재심사건 무조건 불복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이더라도 죄질이 좋지 않고 혐의가 분명하며 증거가 충분한 사건이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일반사건과 같이 상고를 하는 게 맞다. 재심사건이기 때문에 불복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 업무를 이어 받은 안전행정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일부 불법성'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혐의가 짙으면 유죄가 무죄로 바뀌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사 과정에서 자행한 불법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난 경우'는 항소내지 상고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재심사건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국사건들 사건 대부분은 허위 자백이나 조작된 증거를 근거로 유죄가 인정된 것들이다.
과거 철권정치 시대에 경찰과 중앙정보부 등 수사기관은 피해자를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범죄자로 만드는 일이 적지 않았다.
즉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사건들로,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 적지 않은 이유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근거해 유죄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재심' 입법취지는 '비겁한 과거에 대한 반성'
때문에 형사소송법에서는 ▲증거가 위조됐거나 증언이 허위인 경우 ▲재판의 증거로 쓰인 판결 결과가 뒤바뀐 경우 ▲무죄 등을 선고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긴급조치 위헌 결정 등) 등을 재심사유로 정하고 있다.
이 같은 사항들이 재심사유로 규정된 입법 배경에는 과거 독재정치 등에 침묵했던 검찰과 사법부의 진지한 반성이 녹아있다.
그러나 검찰의 재심불복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비겁한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라는 재심관련 입법과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평가다.
검찰의 재심불복 여부는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1차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이 최근 48년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 났지만 검찰이 엿새만에 불복 상고한 것과는 대비되는 예로, 2007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다.
검찰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유족들의 고통 등을 감안해 항소를 포기한다"고 밝혔고 당시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현 헌법재판관)는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두고 검찰 출신 김희수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때 인혁당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로 드러나 그대로 확정됐다"며 "검찰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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