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짙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화업계의 내년 전망은 업종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우선 정유사들의 주력이자 캐시카우였던 정유사업 부문의 부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제마진과 직결되는 국제유가가 중동 리스크 해소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셰일오일의 공급 확대 등으로 약보합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올해보다 진전된 실적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 세계 경제가 소폭이나마 상승하며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반면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사업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제마진 하락에 따른 자구책으로 파라자일렌(PX)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각 업체들이 우후죽순 신증설 경쟁에 뛰어들면서 공급과잉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풍요속의 빈곤'에 처해 있던 태양광 기업들은 내년부터 흑자전환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발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발전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등 체질개선 작업에 나선 덕이다.
◇정유업계 내년에도 보릿고개..유가약세 직격탄
무엇보다 중동발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된 점은 뼈아프다. 정제마진은 국제유가에 곧바로 연동되는데, 그간 중동 리스크는 유가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란발 핵 협상이 타결되고, 이라크도 정세 안정을 되찾는 등 중동의 모래 열풍이 잦아들었다.
정유사들은 석유 수요가 뚜렷히 늘지 않는 상황에서도 중동 리스크 덕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로 내년에는 이 같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정유업계가 중동발 리스크 해소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원유 공급량의 증가도 복병이 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과 극적으로 핵 협상을 타결하고 경제제재에서 자유로워진 이란은 1년 내 원유 생산량을 현재 250만배럴에서 400만배럴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라크도 전후 재건 산업을 위한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내년 원유 생산량을 100만배럴 증가시키기로 했고, 리비아 역시 원유 생산량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급의 안정화다.
여기에 미국의 출구전략과 셰일가스·오일 공급 확대도 유가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생산된 석유의 수출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경기 회복으로 원유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결국 공급량이 수요를 넘어서며 유가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출처=하나대투증권
국제정세 변화와 수급상황 등을 감안할 때 내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95~100달러, 국내 원유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최근 가격보다 7달러가량 낮은 100달러대 초반을 기록하는 등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는 중동 리스크 해소와 공급량 증가, 미국의 출구전략 등 유가 하락을 견인할 요인들이 늘면서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면서 "유가의 변동성이 심해야 이익 규모도 늘어날 여지가 큰데, 내년 역시 정제마진 등 수익 측면에서 이렇다 할 회복세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세계 경기도 무시못할 요인이라고 지적하며, 업황 회복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올해 세계 경기가 지난해에 비해 사정이 나아졌지만, 업황은 여전히 바닥이었다"면서 "세계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어야 실적도 완연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하나대투증권
◇석유화학, 사업자별 희비 극명
석유화학 부문은 사업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전망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석유화학이 주력인 업체들은 올해에 이어 회복세가 이어지는 반면 정유업계의 석유화학 사업 부문은 부진이 예상된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세계 경기 회복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상 석유화학 제품 가격은 선진시장의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과 유럽의 소비 증가는 중국의 대 미국·유럽 수출을 촉발하고, 이는 중국에 석유화학제품 원료를 수출하는 한국과 중동 등의 기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일단 내년 세계 경기 전망은 긍정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2014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5%로, 올해(3.1%)보다 0.4%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소비수요가 살아나면서 세계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앞당길 정도로 실물경기 회복 속도가 빠른 데다, 유럽 또한 재정위기에서 벗어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최근 호조세를 보이는 범용제품이 석유화학 업체 실적 회복의 견인차가 될 전망이다. 올 3분기 중국의 대 유럽 수출이 개선되면서 범용인 폴리에틸렌(PE) 계열 제품 가격이 반등, 각 기업들의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내년 경기 전망 역시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여기에 석유화학 업계에서 굵직한 신·증설 계획이 없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제 회복 기조와 유럽,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 부양으로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이 예상된다"면서 "PE 등 에틸렌 제품군을 중심으로 가격이 서서히 오르고 있는 만큼 석유화학 업황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복 속도와 폭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PE 제품군을 제외한 나머지 석유화학제품 가격은 여전히 부진에 빠져 있는 상황. 아울러 역내 최대 시장인 중국 내에서 중동산 원료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김승우 삼성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는 눈에 띌 만한 신·증설 소식이 없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는 올해보다 유리한 시장환경"이라면서 "선진국의 경기 회복 속도에 따라 석유화학 업체들의 실적도 연동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뉴스토마토 DB
이와 반대로 정유사의 석유화학 사업부문은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PX는 합성섬유와 페트(PET)병을 만드는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의 원료로, 정유업체들은 주력인 정유사업의 수익성이 날로 악화되자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PX 사업에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일단 내년 경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PX 수요 또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나 공급과잉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예상된다.
실제 국내에서는 내년 하반기 삼성토탈(연산 100만t)을 시작으로 SK에너지(연산 130만t), SK종합화학(연산 100만t), GS칼텍스(연산 100만t) 등이 공장을 완공한다.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의 수익도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란 게 유력한 분석이다.
업계 전문가는 "내년 경기가 성장세를 이어가며 PX에 대한 수요도 분명 늘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PX 증설 물량이 몰려 있는 만큼 올해보다 실적이 더욱 뒷걸음 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태양광 수요, 내년에도 견조..흑자전환 릴레이
태양광 산업은 내년을 기점으로 '풍요속의 빈곤' 상태에서 벗어날 것이 유력해 보인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내년 태양광 수요가 올해보다 14% 증가한 40기가와트(GW)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과 중국, 미국이 전 세계 수요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성장세를 견인한다는 전망이다.
중국은 내년부터 3년간 매년 10GW 규모의 설치 목표를 제시, 단일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설치 수요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태양광 업계의 격전지가 된 일본 시장도 올해와 비슷한 규모의 수요가 기대된다. 미국 역시 내년 시장 규모가 4GW를 기록, 올해보다 1GW 규모로 확대되는 등 비유럽 지역의 강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출처=한화투자증권
이에 따라 태양광 업체들의 흑자전환이 내년에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태양광발전 소재 중심의 제조업보다 다운스트림 영역으로 발을 넓힌 기업들을 중심으로 뚜렷한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란 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실제 중국 캐네디언솔라는 모듈 중심에서 다운스트림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올 3분기 5500만달러(한화 57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트리나솔라 역시 동일한 전략으로 600만달러(6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9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등 제조부문의 손실을 발전사업이 상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내년에도 이 같은 제조사들의 발전사업 진출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태양광 기업에서는 OCI와 한화케미칼이 발전사업을 통해 수익성 확보에 나섰다.
한화케미칼은 태양광발전 사업 규모를 올해 140메가와트(MW)에서 내년 3.5배 늘린 500MW 규모를 목표로 제시했다. OCI는 미국 자회사인 OCI 솔라파워를 통해 미국 샌안토니오 지역에서 40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다솔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조사들이 자체 진행 프로젝트에 자사 모듈을 스팟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 공급, 평균 판매가격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발전부문의 수익성 확보를 통해 제조부문의 손실이 상쇄되는 게 입증된 만큼 내년에도 제조사들의 발전부분 진출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기업들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