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석유화학 업계가 고부가 제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 중동 업체들의 도전이 격화되는 등 영업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데 따른 자구책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돌파구로 프리미엄 제품에 주목하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하는 범용 제품에서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는 데 한계가 있다 보고, 진입장벽이 높은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이동, 수익성 확보에 나선 것이다.
◇LG화학, 영업익 업계 최고, 프리미엄이 버팀목
국내 석유화학 업체 가운데 고부가 제품 시장 확대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지난달 중순 이탈리아 1위 석유화학 기업인 베르살리스를 통해 농업과 공업용 필름의 재료가 되는 메탈로센계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mLLDPE)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mLLDPE는 LG화학이 독자 개발한 메탈로센계 촉매를 적용해 만든 열가소성 수지로, 일반 폴리에틸렌보다 20% 이상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 LG화학은 든든한 수익 창출원을 하나 더 확보하게 됐다.
LG화학은 대내외 시장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경쟁 업체들 대비 현저히 낮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범용부터 프리미엄까지 폭넓은 제품군을 갖춰 경기 침체기엔 고부가 제품이 범용제품의 부진을 상쇄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석유화학사업 부문의 중심축인 폴리올레핀 사업의 경우 전체 물량의 80%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구성될 정도로 범용 제품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
전기전자, 자동차 부품, 산업자재, 일상 생활용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타이렌(ABS) 역시 프리미엄 제품이 차지하는 물량 비중이 50~60%에 달한다.
특히 고흡수성 수지와 섬유, 도료, 접착제, 충격보강재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아크릴산의 경우 국내에선 LG화학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2008년에는 고흡수성 수지 사업에 진출, 아크릴산과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성장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다.
그 결과 LG화학의 영업이익률은 동종 업계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음에도 영업이익률이 2012년 연간 8.2%, 올 3분기 8.6%를 기록했다.
범용 제품이 90%대인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2.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포트폴리오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한화케미칼, 프리미엄 제품 확대로 체질개선
한화케미칼과 SK종합화학도 최근 들어 프리미엄 제품군 확보를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내년 1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주베일(Jubail) 석유화학단지에서 20만톤 규모의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와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양산을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EVA는 신발 밑창과 코팅, 전선, 접착제, 태양전지 시트 등에 쓰이는 제품으로 투명성, 접착성, 유연성 등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EVA는 비닐아세테이트 단량체(VAM) 함량에 따라 저함량과 고함량으로 구분되는데,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울산공장에 부가가치가 높은 고함량 EVA를 4만톤 규모로 증설해 국내에서 총 16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에 사우디아라비아 공장 증설이 완료돼 20만톤이 추가되면 미국 듀폰에 이어 EVA 생산량 세계 2위권의 규모로 올라서게 된다.
한화케미칼은 국내에서는 고부가 특화 제품 생산을 늘려나가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필름 및 신발용 EVA등 범용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이원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프리미엄 제품의 제조기반 확대는 한화케미칼의 사업구조에도 점진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폴리에틸렌 계열 판매에서 EVA와 전선용 수지(W&C)를 합친 특화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09년 12%에서 2012년 상반기 17%로 올라섰다.
◇SK종합화학, 中에 프리미엄 생산기지 확보
SK종합화학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 확보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군으로 발을 넓혀 프리미엄 제품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오는 2014년 완공을 앞둔 울산 넥슬렌(고성능 폴리에틸렌) 공장을 비롯해 중국에서는 타이어 소재를 쓰이는 고기능성 이중합성고무(EPDM)와 스판덱스의 원료가 되는 부탄디올(BDO)의 공장 건설을 각각 진행 중이다.
중국 국영기업 닝보 화공과 손잡고 저장성 닝보 지역에 공장을 짓고 있는 EPDM는 중국내 자급율이 낮아 중국 정부가 외상투자를 장려하는 품목이다.
SK종합화학과 시노펙이 각각 19억위안(한화 약 3400억원)을 투자해 충칭 창서우 경제기술개발구에 연산 20만t 규모의 부탄디올 공장을 짓고 있다. 이는 중국 내 최대 생산 규모로 오는 2015년 말 완공 예정이다.
SK종합화학은 공장이 본격 상업생산을 시작하는 2016년에 중국 부탄디올 시장의 15% 이상을 점유하며 수익성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미쓰비시케미칼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16년까지 울산에 연산 16만t 규모의 아크릴산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크릴산과 아크릴에스테르는 기초소재인 프로필렌을 고부가가치 제품화한 것으로 페인트·접착제·첨가제 등 정밀화학 제품의 원료가 된다.
석유화학 업체들이 프리미엄 시장 확대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족과 중국과 중동 등 후발업체들의 추격 등 시장 변화에 따른 자구책 마련이 절실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쟁사들과 제품군이 겹치지 않으면서 수요 창출이 지속될 수 있는 사업으로 프리미엄 제품이 선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제품에선 이미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국내 기업을 바짝 쫓아왔기 때문에 생산규모 경쟁은 오히려 판가 하락만 부추기게 된다"면서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선 진입 장벽이 높은 고부가 제품을 통해 독자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게 가장 큰 화두가 됐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석유화학단지 전경(사진=뉴스토마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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