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직장인 A(33세)씨의 하루하루는 전쟁과 다를 바가 없다. 7시반에 일어나 바로 17개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남편 아침을 차려준다. 베이비 시터가 오면 그제서야 화장을 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직장에서도 아기가 자꾸 신경쓰인다. 아침에 열감기를 앓았는데, 괜찮은지 베이비시터에게 문자를 보낸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이제 가려하는데 갑자기 회식이란다. 상사의 잔소리가 뻔하게 예상되지만 일단 아이 때문에 칼퇴근을 해야한다. 남은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기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재운다. 집안은 이미 아기와의 사투로 엉망진창이다. 그제서야 한 두숟갈 밥을 먹고,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가 마무리 되면 회사에서 가져온 일을 한다. 남편은 야근을 끝내고 그제서야 집에 온다. 다시 내일을 버텨낼 생각에 눈앞이 깜깜하다.
한국에서 워킹맘은 거의 슈퍼맨에 가깝다. 아이가 있다고 일을 덜 주지 않는 회사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일을 해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로서, 엄마로서 너무도 당연하게 요구되는 가사노동과 양육의 의무를 다해야한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직장인, 엄마, 아내 그리고 며느리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지난해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30, 40대 워킹맘 1천 명을 대상으로 '워킹맘 고통지수'를 조사한 결과, 워킹맘의 83.7%가 '직장과 육아의 병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혁미 씨(38세)는 "워킹맘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니 너무 몸과 맘이 지쳤다"며 "나는 정말 숨 쉴틈 없이 회사와 집에서 일하는데도 다들 내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킹맘인 윤미진(34세)씨는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데 아이가 있으니 회식이나 회사 행사에는 거의 참석을 못한다"며 "인사고과에서도 늘 상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고 한숨 지었다.
시댁과의 갈등도 생겨난다.
김상희(33세)씨는 "어쩔 수 없이 시댁에 아이를 맡기는 날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은근한 눈치를 받는다"며 "시어머니 눈에는 잘난 아들과 귀한 손주 제대로 못챙기는 못난 며느리로만 보이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육아문제..경력단절 높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전체 190만명 중 30대가 57.1%로 가장 많았고 이어 15~29세는 12.6%, 50~54세는 6.6.% 다. 한창 아이를 키우는 시기의 여성들 상당수가 사표를 선택하는 것.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출산한 여성의 퇴직 사유 중 68%가 육아의 어려움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상희(30세)씨는 "200만원 좀 넘게 버는데 가사도우미 쓰고, 아이봐주는 시댁에 돈 드리고 하면 얼마 남는 것도 없다"며 "아이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하는데 이럴거면 그냥 회사 그만 두는게 낫지 싶다"고 말했다.
김신희씨(31세)씨는 "아이를 맡길만한 믿을만한 곳이 없었다"며 "일 스트레스와 육아 스트레스가 동시에 생기니 너무 힘들어서 일을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여성의 노동곡선은 전형적인 엠자형 커브를 띤다. 30대 여성들이 육아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난 후인 30대 후반이나 40대가 되면 경제적인 이유로 재취업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재취업은 더 어려워
하지만 재취업은 더욱 어렵다. 특히 경력단절여성들이 기존 경력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시장도 매우 경직적된 상항인데다가 여성들도 육아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풀타임 일자리에 쉽게 도전하기 힘들다. 따라서 취업 여성 대부분이 열악한 시간제 일자리로 흘러 들어간다.
김영신(46세)씨는 "과거에는 제2금융권에서 상무까지 했지만 재취업 시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지방 소도시에 살다보니 일할 곳이 더욱 마땅치 않아서 지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표받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미선(44세)씨는 "경력을 살려 정규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며 "우리나라 기업 문화 아래서는 풀타임 잡(full time job)은 칼퇴근이 어렵기 때문에 아이를 키워야하는 엄마들을 채용하는 것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김진아(45세)씨는 "유명대학을 나오고 처녀 때 대기업에서 일했지만 경력단절여성은 그저 사회에서 경력단절 여성일 뿐"이라며 "오히려 재취업 시장에서 많이 배운 여성은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해서 더 취직이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박성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임신이나 육아 기간에 경력단절이 있게 되면 직업과 관련된 능력이 감퇴하기 따문에 다시 복귀하려고 해도 직업 역량이 떨어지게 된다"며 "여성들도 가사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원하기 때문에 과거와 비슷한 직장에서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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