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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법적 지위 문제 삼는 朴정부, 노동정책 시험대
법리해석 뒤에 숨은 '차별화된 잣대'..ILO도 연속해 문제 제기
2013-10-11 14:35:55 2013-10-11 14:39:42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안으로 법적 지위를 잃을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해직교사 9명을 지목해 조합에서 방출하지 않으면 설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3일 담당국장을 통해 이런 공문을 전교조에 직접 전달했고 기한은 오는 23일까지로 못을 박았다.
 
이때까지 정부가 지시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지위가 바뀌고 더는 단체교섭에 나설 수 없는 등 노조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노조 입장에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이로써 전교조는 지난 1999년 합법화된 지 14년만에 다시금 기로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은 동시에 박근혜정부 노동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캡쳐
  
갈등의 발단은 3년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부는 전교조 규약 일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위배된다며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고치라고 명령했고 전교조는 계속 거부해왔다.
 
문제의 규약은 해직교사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내용으로, 전교조는 노동부의 시정명령이 노조의 자주권을 침해한다며 '취소소송'까지 냈지만 3심으로 올라간 판결은 최종적으로 노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전교조는 이 판결에서 벌금형(100만원)을 부과받았다.
 
지난달 전교조를 상대로 한 노동부의 '세 번째 통보' 역시 이 연장선에 놓인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법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3년전부터 두번이나 이야기 했는데 전교조가 규약을 안고치고 있다"며 "우리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 교원노조법은 현직교원만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데다, 노조법은 시행령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 시행령에서 불거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전교조가 지시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전교조는 반대로 이 조항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현행 헌법은 '법률'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명시한 만큼 '시행령'만으로 노조 설립을 취소한다는 건 과잉처벌이자 그 자체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인 것.
 
사진제공: 전교조
 
법리 다툼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의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게 전교조 주장이다. 정부가 '반 전교조'를 천명한 자유교원조합에 대해선 전교조와 판이한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교조의 주장.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준법을 강조하는 정부지만 자유교원조합이 갖고 있는 '해직자의 조합원 신분 보장' 규약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았다"며 "뒤늦게 문제가 되니까 규약을 내리게 하겠다고 하는데 형평성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교조에 따르면 한국노총 산하 3000여개 사업장, 민주노총 산하 2000여개 사업장에서도 해직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유독 전교조 규약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전교조를 표적 삼아 무력화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올들어 두차례 이어진 국제노동기구(ILO) 대응도 주목된다. 노동부와 전교조에 따르면 ILO는 지난 3월과 지난 1일 노동부에 '서한'을 보내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삼는 태도를 지적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정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고 우리도 비공식적으로 입장을 전할 계획이며 내용은 현재 검토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노동부는 10일 별도 해명자료를 내면서 "ILO의 이번 서신은 '의견조회' 의미"에 가깝고 "노동계가 주장하는 '긴급 개입'은 사안의 긴급성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내용상 ILO의 대응은 전교조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 방침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ILO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입장 표명'에 그치는 것이라 해도 정부가 유엔산하기구의 견해를 거스르는 방침을 강행하는 건 그 자체로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전교조
 
무엇보다 전교조 해직교사는 사학비리를 내부고발했거나 아이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줬다가 해임당한 경우가 다수인 만큼, 이들에 대한 태도를 통해 향후 노동정책의 '철학'을 가늠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전교조는 노조가 이런 이들을 당연히 안고 가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박근정부는 '법리'를 내세워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조를 고수하는 중이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한달 안에 해직자를 탈퇴시키고 규약을 개정하라고 하는 건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가기 위한 수순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전교조부터 법외노조화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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