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수난시대..표절 논문에 퇴직 러시 '우울한 자화상'
입력 : 2013-09-06 18:42:58 수정 : 2013-09-06 19:17:26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국책연구기관들의 수난시대다. 표절 논문과 엉터리 보고서가 속출하는가 하면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가 늦어져 기관장이 없는 곳도 있다. 세종시 등으로의 지방이전을 앞두고 이·퇴직자가 발생하는 등 인력유출도 늘고 있다.
 
최고의 인재만 모여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국책연구기관의 위상 추락을 두고 기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과제의 우수성을 높이고 인력유출을 막아 국가정책과 대안 마련에 기여하게 하는 등 기능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
 
6일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실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5개 국책연구기관의 75편의 논문 중 48편에서 표절 의심사례가 229건이나 나왔고, 18편에서는 중복게재 의심사례가 79건이나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자료제공=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각 기관당 3편의 논문을 무작위 점검한 결과로, 전체 논문 수를 따지면 실제 표절은 훨씬 많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75편 308편의 표절 의심사례 중 최다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으로 총 34건이었으며 통일연구원(23편)이 뒤를 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의 논문이나 보고서에 대해 예산만 낭비한 엉터리라는 비판이 쏟아지는가 하면 기관장이 없어 기관 운영이 장기간 표류하는 기관도 있다.
 
감사원은 "최근 민간투자사업의 적격성 판단 실태를 검토한 결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성이 낮은데도 적격한 것으로 판정하고 주무관청에는 비현실적 실행안을 제시한 일이 많았다"며 "적격성 조사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행정력과 재정이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KDI의 연구과제는 ▲성남 경전철 ▲경기도 용인시 삼가~포곡 간 도로 ▲서울제물포도로 ▲신분당선(용산~강남) 복선전철 사업 등으로 각 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모두 따지면 총 2조1950억원 규모에 해당한다.
 
◇신분당선(용산~강남) 복선전철 사업도(자료제공=국토교통부)
 
그래도 KDI는 사정이 낫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을 비롯 미래창조과학부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은 기관장이 없어 보고서나 조직에 문제가 있어도 이를 개선할 사람이 없다.
 
이·퇴직 등 인력유출도 심각하다. 세종시 등으로의 지방 이전에 따른 지방 근무 부담감 때문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따르면 우선 KDI, 한국법제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토연구원 등 4개 기관 560여명이 올해 말부터 세종시로 내려간다.
 
울산으로 옮기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충북 진천으로 내려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남 나주로 이전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도 있다. KDI 관계자는 "3명 중 1명은 이직하려고 한다"며 "서울에 새로 취업하거나 민간연구소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과거 우리나라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주도하며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으던 국책연구기관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KDI 관계자는 "2000년 초까지만 해도 KDI에 들어가려면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아야 했고 경제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며 "지금도 인력구성은 우수하지만 밖에서 보는 시각은 예전과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책연구기관의 실력과 위상의 하락은 정책의 질적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원진 의원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는 정부 정책과 대책 입안의 중요 근거가 된다"며 "연구결과가 표절로 얼룩진다면 여기에 기반한 정부 정책도 신뢰성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산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전경(사진제공=경제인문사회연구회)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이 지금 겪는 문제는 스스로 자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가의 정책적 밑그림을 그리고 대안을 수립하는 기구의 특성상 정부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표절 논문과 엉터리 보고서를 만드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국행정학회 관계자는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만큼 국정과제에 맞춰주는 연구과제를 수행한 게 사실"이라며 "사안이 찬반으로 갈리더라도 정부에 찬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정부에 유리한 데이터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국책연구기관이 제 기능을 찾으려면 정부부처로부터 연구활동 등에서 독립성을 찾고 기관당 평균 300억원인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며 "연구원들이 소신을 가지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는 "국책연구기관은 독립된 예산과 인사권을 가진 기구로 정부부처로부터 간섭받는 일은 없다"고 전제한 뒤 "성과별 연봉제 도입, 직급별 세분화 등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표절과 엉터리 보고서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내부 윤리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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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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