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지하철 계단을 보세요. 아주 많고 가파릅니다. 할머니들이 이 계단을 오르는 건 어떨까요? 당연히 힘들죠.이 공간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유니버설 디자인(UD, Universal Design)은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UD전문가 이호창 design is 대표의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UD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요즘들어 UD가 적용된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편한 디자인 찾는 발길 잦아져
최근 함께하는 UD실천연대가 주관한 '2박3일간 함께하는 디자인 공감' 강의 현장.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참가자들은 휠체어 장애인, 시각 장애인, 어린이, 산업 디자인 학과 학생 등으로 다양하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모인 참가자들은 UD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직접 도시를 돌며 UD의 적용이 필요한 부분을 연구하고 발표도 한다.
한 참가자는 "손에 반창고를 감고 칫솔을 케이스에 넣으려니까 너무 어려웠다"며 "UD가 왜 필요한 지 알게됐다"고 말했다.
U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UD실천연대는 3년전부터 매년 '2박3일간 함께하는 디자인 공감'을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 공감' 참가자들이 도시를 돌며 UD가 필요한 곳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위문숙 서울DPI 대표는 "UD에 대한 교육과 체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UD를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 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도 '찾아가는 UD현장체험 교육'을 운영한다. 이 교육은 지난 2011년 경기도가 UD 종합 추진 계획'에 따라 UD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기 위해 시작됐다. 지난해 22개교에 이어 올해 25개교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자체가 가장 적극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인식 확산과 고령화로 인해 선진국에서는 UD가 일상화 되어 있다.
일본 내각부에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10명중 8명은 UD를 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UD 인식 수준을 가늠할만한 별다른 통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UD 교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등 최근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UD 도입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UD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서울시 노인복지센터, 장애영유아거주시설 등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일 뿐 꼭 지켜야하는 의무 사항은 아니다.
경기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경기도는 지난 2011년 2월 UD를 정책과제로 선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공공공간, 공공건축물, 도시기반시설물, 가로시설물, 공공정보매체 등 공공시설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경기도는 공공디자인 위원회를 통해 공공시설 건축이 이 가이드라인 지침에 벗어나면 심의를 통과할 수 없도록 했다.
채완석 경기도 공공디자인 팀장은 "현재 경기도는 UD 조례를 올해 안에 재정하기 위해 관련기관들과 협의 중에 있다"며 "내년에는 경기도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잘 따른 공공청사나, 공공공원 등에 UD 도지사 인증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시는 전문가들이 꼽는 UD가 가장 잘 적용된 도시다. 전국 최초로 지난 2007년 '화성시 공공시설물 UD 조례'를 제정해 공원, 주차장, 교통시설 등 공공시설에 UD 적용을 의무화했다.
◇기업에도 UD 바람
기업들도 UD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제력을 가진 노후 세대가 늘며 똑같은 제품이라도 UD가 적용된 제품이라야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 가운데서도 건축물에 UD를 도입하는 사례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고 있다. 롯데몰 김포공항점은 UD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통로는 널찍하고 어디에도 턱이 없어 휠체어 장애인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현대건설(000720)의 용인상현힐스테이트는 노인들의 신체와 생활습관을 고려한 골든팩을 마련했다. 골든팩에는 노인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 응급호출 시스템, 신발장 의자, 미끄럼 방지 바닥 등 모두 50여 특화 아이템이 포함돼 있다.
◇현대 힐스테이트 골든팩. 왼쪽은 상부장에 거울 설치해 보이지 않는 그릇을 볼수 있게 했고, 오른쪽은 싱크 하부장 리셋으로 공간을 확보해 쉽게 설거지를 할수 있도록 했다.<자료출처=현대건설>
하지만 아직 UD 관련 제품 개발은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토토(TOTO), 옥소(OXO)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이미 UD 제품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국내 기업체가 생산한 UD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UD 제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샵(Shop)도 국내에 한 곳이 없다.
이연숙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기업들이 UD 적용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나라도 UD의 정책적 지원, 기업의 투자를 늘려 급격히 팽창할 고령친화산업에서 뒤쳐지지 말아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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