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간 지속돼 온 미국과 이란 간 냉기류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인은 무슬림의 적이 아니며 이란이 주먹을 편다면 외교적 노력을 펼치겠다"며 전임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나라에 손을 내밀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오바마가 말하는 변화가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라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독설을 잠시 접었다.
미국과 이란은 현재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지만 양국간 갈등과 반목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1920년대만 해도 미국과 이란은 우호적 관계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칸의 팔레비 왕조는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고 중동 원유 확보의 교두보가 필요했던 미국은 팔레비 왕조를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국민적 인기를 모으며 권력을 장악하고 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의 영향으로 힘을 키운 이란 공산당(투데당)과 손을 잡자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란의 군부 쿠데타를 부추긴다.
모사데크는 결국 반역 혐의로 체포돼 1953년 실각했고 미국의 지원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팔레비 왕조는 1959년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등 미국을 노골적으로 추종하게 된다.
이런 양국 관계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종지부가 찍힌다.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부패한 친미 정권으로 몰아 붙이면서 반미 노선으로 새 혁명 정권을 차별화했다.
이런 가운데 1980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는 이듬해 4월 양국간 국교 단절을 초래했다.
대사관에 억류됐던 인질 52명이 444일이 지나서야 풀려나면서 이란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이 극도로 악화된 계기가 됐다.
1980∼1988년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양국간 틈을 더욱 벌려 놓았다. 반미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은 이라크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1996년 8월에는 이란과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 이들 국가의 원유와 가스 개발 투자를 금지하는 이란.리비아 제재법안, 일명 다마토법을 발표하면서 대 이란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2002년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2003년 수면 위로 떠오른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이란의 지원 의혹은 양국 관계를 좁히기 어렵게 만드는 현안들이 됐다.
대다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대 이란 정책이 부시 행정부 정책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기 어렵기 때문에 미-이란 관계 개선이 쉽진 않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갈등과 반목의 관계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점 만큼은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 보스턴대학의 앤드루 바세비치 국제관계학 교수는 AP통신을 통해 "이슬람권의 여론은 우리의 말보다는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부시 행정부 때와) 다른 어조는 확실히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