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논란..재계 "대주주 경영권 손대지 마" 반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논란..9월 국회 처리 첩첩산중
2013-08-21 17:15:19 2013-08-21 18:28:57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법무부가 지난 달 입법예고한 기업 지배구조개선 관련 상법 개정안이 재계에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업 내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고 소액주주 의결권을 넓히는 내용이 핵심인데, 상대적으로 권한이 줄게 되는 재계를 중심으로 대주주 경영권에 손대지 말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총수의 의결권이 제한되면 외국계 헤지펀드가 침투해 국내기업이 털릴 수 있다며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중이다.
 
이와 반대로 주주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하며 다른 차원에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올해 하반기 국회를 겨냥해 줄줄이 대기 중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 법의 첫 결과물로 주목된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흐름이 올해 상반기엔 기업 간, 혹은 기업 내 불공정거래를 고치는 데 집중됐다면 하반기엔 대기업의 불합리한 구조를 손보는 근본적 수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주주 감시냐, 경영권 위기냐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과 이사의 분리 선임 ▲이사회의 업무집행과 감독기능 분리 ▲집중투표제 간접의무화 ▲전자투표제 일부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크게 5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재계가 특히 반발하는 내용은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그리고 이른바 ‘3%룰’을 확대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조항이다.
 
현행 상법에 명시된 ‘3%룰’, 즉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대해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가 소유하는 주식이 3%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정도 규모의 대기업에선 주주총회를 열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선임한 뒤 그 안에서 감사를 대신하는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사를 선임할 때는 대주주 의결권에 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감사위원을 뽑을 때 적용하는 3%룰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인 것.
 
이에 따라 개정안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과 사내·외 이사를 분리해 선임토록 명시,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에 적용하는 3%룰이 실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감사위원의 독립성이 확보되고 이들이 감사 역할에 충실하면 기업의 지배구조도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게 개정안 취지다.
 
재계는 이런 논리 자체가 대주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대주주 의결권을 3%를 묶어놓고 집중투표제가 이뤄지면 심한 경우 외국계 헤지펀드를 등에 업은 소액주주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사 혹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집중투표란 각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선임할 이사 수를 곱해서 의결권을 갖게 하고 이를 특정 이사후보에 몰아줄 수 있게 한 제도다.
 
현행 상법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대해 지분율 1%를 갖고 있는 소수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회사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같이 명시함으로써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4개 기업에서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개정안은 이에 따라 회사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재계는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외국계 펀드가 지분율 1%를 얻어 국내기업 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개정안이 다중대표소송을 도입하는 내용을 명시함에 따라 미국 애플사가 삼성의 주식을 취득한 뒤 삼성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이사의 잘못으로 모회사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한국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기업 지배구조를 주제로 지난 해 아시아 11개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한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자료 제공: 경제개혁연구소)
 
◇“상법 취지 생각하면 재계 논리 과장”
 
법무부는 오는 25일 상법 개정안의 입법예고기간이 끝나면 정부안을 최종 확정해서 올해 하반기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계 역시 다음 달 정기국회 개원을 겨냥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등 연일 분주한 행보다.
 
특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연일 상법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하는 자료를 잇달아 내는 등 여론전에 힘쓰고 있다.
 
재계는 오는 22일 상법 개정안을 완화해달라는 의견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주주자본주의에 천착해온 시민사회에선 이번 상법 개정안 내용이 미흡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법무부의 상법개정 입법예고안에 담긴 내용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지만 각각의 실효성을 제약한 까다로운 요건들이 붙어 있어 실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다중대표소송에 대해 "법무부 입법예고안은 50%를 초과해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하고 있는데, 통상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 지배관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주주대표소송은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금전보상을 목적으로 하지않는 공익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분율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상법상 ‘3%룰’ 적용과 관련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감사위원 선출에 적용할 것을 강조했다.
 
현재 재계는 대주주 전횡을 견제하려는 법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며 개정안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을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 역시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이 장기적으로 국내 대개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 만큼 지나친 기대나 지나친 호들갑은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회사를 장악하려면 이사회를 장악해야 하는데 기업의 감사위원이 이사회 전체 과반을 넘는 경우가 없고 모든 감사위원을 3% 의결권 제한으로 외부에서 선임하더라도 이사회를 장악할 수 없다"며 "재계 주장은 과장이 심하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기업의 내부 비리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상법 내용"이라며 "재계 주장은 견제받기 싫다는 이야기를 과장과 거짓말로 포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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