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소공인)밤하늘의 별처럼.."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르포)③-1. 종로3가 귀금속거리
2013-06-07 14:07:20 2013-06-07 14:10:06
[뉴스토마토 이보라·이준영기자] "종로 귀금속 거리에는 중국산이 없어요. 여기 보석은 99% 국내에서 제조한 겁니다. 요즘 중국산 없는 제품 분야 봤습니까? 상인들이 귀금속 팔 때 마진을 낮추고 기술력을 높인 성과지요."
 
서울 종로3가역 11번 출구. 귀금속 판매점들이 길가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건물 층층마다 '귀금속, 다이아몬드 판매'라고 쓰인 간판들이 즐비하다.
 
아시아 최대 귀금속 집적지인 종로 3가와 4가 일대에는 2900여개에 달하는 귀금속 관련 업체와 5000여명의 종사자들이 있다. 유통량은 연간 2조7000억원에 이른다. 국내 귀금속 유통량의 절반이 이곳에서 이뤄지는 '메카'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소비패턴 변화..예물시장 '위축'
 
중국과 이탈리아가 종로 3가에 지점을 내고 국내 진입을 노렸지만 3년도 채 안 돼 두 손 들고 물러났다. 우리나라 귀금속 산업의 낮은 마진과 경쟁력에 굴복한 것이다. 덕택에 종로3가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과시했지만 그렇다고 불황의 여파마저 비켜간 것은 아니다. 
 
종로 귀금속 거리는 1960년대 종로4가 예지동이 결혼예물 귀금속 상가로 이름이 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80년대 종로 귀금속 거리는 경제성장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소비 씀씀이가 커지면서 귀금속을 찾는 이들이 늘은데다 마땅히 갈 곳 없던 지방 출신들이 이곳에 보따리를 풀면서 공급 또한 원활했다.
 
번영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연달아 터지면서 내수는 극도로 침체됐다. 여기에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 등이 겹치면서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원자재값은 오르는데 수요는 급감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종로3가의 주름은 깊어졌다. 골목마다 흘러넘치던 생기는 한숨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였다.
 
◇종로3가 귀금속 거리 뒷골목(사진=이보라 기자)
 
무엇보다 예물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수요의 큰 손이 사라진 셈이다. 경기침체에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예물은 집과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필수 자리를 내줬다. 김기영 라비 대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화돼 가면서 예물은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예전에 결혼할 때는 진주에 다이아몬드까지 세 가지 세트는 기본이었어요. 경기가 안 좋다보니 예물을 줄여 커플링만 하거나 기껏해야 한 세트 정도 하는 분위기에요. 돈을 줄이는 일차적 대상이 예물이 된 거죠."
 
김 대표가 인생의 새출발을 기념하는 '예물샘플'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IMF 이후부터 귀금속 업체들의 부도가 거래선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외상 대금이 쌓여가면서 종로3가 '메인거리'에서 버티지 못했다. 현재는 10여명 정도의 직원을 데리고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판매까지 하면 머리가 아파요. 외상이 많이 나오거든요. 이걸 잘못 관리해서 문 닫고 없어지는 데도 있고, 나도 뭐..." 그는 말 끝을 자주 흐렸다. 12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두고 있지만 매출은 해마다 줄고 있다. 책임은 부담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 업종은 필수재가 아니다 보니, 경기불황의 여파가 처음으로 오고 경기 회복의 효과를 가장 늦게 체감해요."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다시 한마디를 어렵사리 내뱉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성장만큼 고용창출하는 '귀금속산업'
 
◇한 귀금속가공공장에서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다.(사진=이보라 기자)
 
고도의 가공기술과 창의적 디자인을 이용한 귀금속 산업에서 '사람'은 빠질 수 없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기계의 힘보다는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한다. '고용 없는 성장' 대신 성장하는 만큼 고용이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인적 중심의 가공산업이기 때문. 동네빵집조차 침범하는 재벌들이 이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때문에 귀금속 산업이 발전하면 장애인, 고령자, 주부 등의 고용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현재 이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다리가 튼튼하지 않아도 눈과 손이 자유롭다면 이곳에 취직해 사회인으로서 당당하게 제몫을 해낼 수 있다. 
 
자체적으로 살 길을 헤쳐가는 중소 제조업체들도 있다. 불안한 내수시장에 의존하기 보다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7개 업체가 손을 잡고 공동법인을 설립, 해외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내수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한 수출이었지만 지금은 수출이 내수보다 비중이 높아졌을 정도로 내수시장이 무너졌다.
 
"제조 기반 없이 어떻게 유통이 클 수 있겠습니까?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은 대기업에 가겠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요? 이런 사람들이 올만한 직장도 남겨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데라도 살아 있어야 먹고 살죠. 그런데 우리 같은 산업을 왜 그리 방치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30여년 경력의 기술자가 반지를 수리하고 있다. (사진=이보라 기자)
 
업계 관계자들은 귀금속 산업이 뛰어난 경쟁력을 가졌음에도 브랜드화 및 글로벌화에 실패한 것은 바로 정부의 정책 부재 탓이라 했다. 정부가 해당 업종에 대해 '사치산업'이라 규정짓고, 정치·사회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200만원 이상 제품에 매겨지는 '개별소비세'도 시장을 위축시킨 주요 원인 중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귀금속 제조업체 JMC 코리아를 운영하는 김배섭 사장도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디자인 육성에 정부가 나서준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을 떨칠 수 있는 분야라며 자신감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재주와 머리가 좋잖아요. 100% 손재주로 지금의 경쟁력을 만들어 온거죠. 하지만 손재주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어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제 '디자인 개발'에 대한 지원은 필수입니다. 그것만 해결된다면 판매는 자신 있어요."
 
◇"대출지원요? 문턱에도 못 가봤습니다"
 
특히 자금난은 심각했다. 결혼철을 맞아 일년 중 가장 아름답고 푸르른 생기가 돌아야 할 5월 끝자락. 종로 3가 뒤편 서순라길의 한 금속공방에서 체념한 듯한 눈빛으로 김명진 태성크래프트 대표가 말했다.
 
"개발하고 싶은 기술과 특허가 있어서 자금대출 신청을 했는데요. 모르겠어요.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인지 빽이 없어서인지 안 되더라구요."
 
◇김명진 태성크래프트 대표(사진=이보라 기자)
 
귀금속 제조기술자로 살아온 지 30여년. 그는 자수정, 오팔, 토파즈, 은 등을 브로치와 반지 등으로 가공·판매한다. 기술을 가진 기능인이자, 직접 판매도 겸하는 영세 자영업자다. 기술개발을 위해 대출 신청을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거절 당했다. 특허를 신청하고 인정받는 데 최소 700만원 이상 최고 5000만원이 필요하다.
 
"디자인 하나가 성공하면 업계 종사자 모두가 먹고 살 수 있어요. 중국이나 홍콩, 태국으로 디자인 수출도 가능한 일이죠. 제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건 개인 뿐 아니라 결국 나라에도 도움되는 일 아닌가요?"
 
10여평 남짓한 공간을 둘로 나누어 안쪽에서는 후배와 함께 직접 장신구를 제작하고, 나머지 공간은 도·소매상들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서고 있다.
 
"소상공인 개인사업자는 그냥 '개인' 취급하더라구요. (대출 과정에 있어서)기술자에 대한 지원이 일절 없었어요. 신용이라는 것이 개인신용을 보는 것 아닙니까? 왜 개인이 가진 배경이나 재산을 다시 묻는거죠? 그렇다면 '신용대출' 이 아니잖습니까?"
 
올드팝 'You are my sunshine'이 좁다한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조금 뒤 낮게 읖조려지는 그의 한탄.
 
"대한민국은 기능인이 서 있을 자리가 부족합니다. 기능인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지금은 두 발로 서 있을 공간이 없어 한 발로 서 있어요. 두 발로 서고 싶습니다."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종로3가 귀금속 거리는 전체 귀금속 산업의 극히 일부일지 모른다. 그 안에는 금·은·귀금속 판매, 보석 감정, 보석 수리, 보석 및 주얼리 케이스 판매, 시계 판매 등 귀금속 판매업체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수많은 연관산업이 거미줄처럼 얽혀 거대한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반짝반짝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귀금속으로 가득한 종로3가지만  그 안의 귀금속 제조가공 등 관련 업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만 간다. 사람이 죽어있다.
 
"아침엔 '잘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가게 문을 열지만, 저녁에 '안되면 말지' 라는 마음으로 셔터를 내립니다. 별 거 있나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계속)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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