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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와 금융시장)③금융실명제 20년..여전한 차명거래
2013-05-15 14:00:46 2013-05-15 14:03:36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금융실명제법은 지난 1993년 차명계좌를 통해 불법적으로 명의를 도용하는 금융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금융실명제법은 올해로 도입 20년째를 맞았지만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차명거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실명제법 위반건수는 지난 2010년 106건에서 2011년 195건, 지난해는 10월말까지 548건으로 대폭 늘어나는 추세다.
 
국세청이 탈세를 우려해 관리하고 있는 차명계좌도 지난 2011년 6월말 현재 5964건, 6584억원 규모에 이른다.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근거 '미약'
 
금융실명제에도 불구하고 차명계좌가 여전히 줄지 않는 이유는 미약한 처벌근거 때문이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본인 동의없이 명의를 도용해 금융거래를 할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합의를 통한 차명계좌 개설은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명거래 확인의무도 거래자가 아닌 금융기관에 있고 제재도 실명확인을 소홀히 한 금융기관이 받고 있다. 금융기관이 제재를 받는 만큼 가장 강력한 제재 수위도 과태료 500만원에 불과하다.
 
차명의 땅 주인이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고 땅소유 입증 책임을 실제 소유자가 지도록 하고 있는 부동산실명법보다 훨씬 규제가 느슨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현행 금융실명제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금융거래정보의 비밀을 과도하게 보장하는 법으로 변질됐다"며 "여전히 재벌총수일가의 차명계좌를 통한 차명재산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고 선거 때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문제가 튀어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차명거래 불법화·처벌 강화해야"
 
금융실명제가 처음 논의될 당시에는 모든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입법안이 제출됐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간의 생활비 공유나 계, 지인들간의 친목 목적의 차명거래가 관용화돼 있는 만큼 이를 모두 불법화 하는 것은 무리라는 인식이 공유됐고, 결국 일부 차명거래만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후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만큼 차명거래를 불법화하는 단계가 왔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강임호 한양대 교수는 지난달 18일 열린 한국금융연구원의 지하경제 양성화 심포지엄에서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에는)실명제라고 해도 차명까지 불법화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허용해줬을 것"이라며 "이제 실명제라는 말에 맞도록 차명거래를 불법화할 단계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차명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때가 됐다는 말이다.
 
국회에서도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금융사 관계자 뿐만 아니라 이를 요구한 고객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는 '금융실명거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부에서는 처벌 수위를 높여 과태료 처분이 아닌  벌금, 징역 등 형사처벌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상 차명거래 금지는 신중해야"
 
다만 차명거래 불법화를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은 조세범처벌법이나 전자금융거래법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금융실명법은 실질적으로 계좌개설시 본인확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실명제법에 불법차명거래 금지 조항을 넣으면 이를 누가 판단할 것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조세범처벌법이나 범죄자금규제법 같은 개별법이 아닌 실명법에 불법 차명거래 금지규정을 두면 금융기관이나 금융당국이 불법거래를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벌을 위해서는 차명계좌 중에서 가족이나 친구간의 일상적인 차명계좌와 그렇지 않은 계좌로 나누고, 일상적인 차명계좌도 세금탈루를 위한 계좌와 생활비 목적의 계좌를 분류해야 하는 등 수많은 양태의 차명계좌를 분류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금융실명법에서 차명거래를 완전 불법화할 경우 반대로 실명을 통한 불법자금 거래에 대해서는 확인의무가 사라지는 등 법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든 차명거래가 불법으로 규정된다면 실무적으로 해석할 경우 모든 실명거래는 합법이라고 볼 수 있다"며 "실명거래에 대한 확인의무가 사라져버리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할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인의 명의로 된 단체사용 계좌 등에서 명의자가 사고(?)를 쳐도 법적으로 막을 길이 없다는 말이 된다.
 
또 단순한 절차상의 오류로 인한 금융실명제 위반 건수도 많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에 적발된 금융실명제 위반행위 중에는 금융사가 통장개설 과정에서 주민등록증 사본을 실수로 빠뜨리는 등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로 인한 것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실명법 개정은 금융거래 관행과 제도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라며 "현실을 고려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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