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네 이발소 `바리캉 단상`
2009-01-07 10:00:00 2011-06-15 18:56:52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새해가 밝았습니다. 으레 정월은 설렘과 분주함이 가득 묻어나는 달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차분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합니다. 다들 이유를 알고 계시죠? 아, 마침 저기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도 계시네요.
 
네, 요즘처럼 살기 힘든 시절에 '신년 이벤트'를 만끽할 만한 여유가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하기야, 어차피 영원히 단절이란 있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해[年]와 달[月], 날[日]과 시[時]로 쪼개 구분하는 건 우리 인간들 뿐이지요. 자연은 2008년의 마지막 순간이 2009년의 첫 순간으로 바뀌는 데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일단 가족과 친척, 지인들과 덕담을 나눕니다. 다소 진부하지만, 차분히 한 해 계획을 세워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지요. 혹여 지난 연말 송년회가 성에 안 찼던 애주가들은 또 다시 신년회를 준비하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에 다들 분주하지만, 역시 빼먹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몸단장'이지요. 사람들은 지난 1년간 묵은 때를 씻어내고 깨끗한 몸으로 새해를 맞고 싶어합니다.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그 '의식(儀式)'은 목욕탕에서 이뤄집니다. 그리고 마무리 옵션으로 머리까지 예쁘게 손질하면, 신년맞이 끝.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목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단골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저는 이발소만을 고집합니다. 주변에서는 미용실을 가보라고 적극 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저씨 같다'며 핀잔을 주지만 저는 꿋꿋이 3년째 이발소만을 드나들고 있습니다. 미용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이발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발사의 손을 좋아합니다. 이발사의 손은 날렵하고 따뜻합니다.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칼과 가위도 이발사의 손을 만나면 부드러운 손길이 돼 머리를 매만지지요.
 
째깍째깍, 서걱서걱.
 
자, 이제 가위의 양날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둘 사이를 갈라놨던 삐죽삐죽 머리카락을 잘라내더니 뜨겁게 포옹, 그러나 순식간에 이별. 가위의 '러브스토리'를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묘한 느낌이 귓등을 타고 흐릅니다.
 
아시죠? 처음에는 간지럽더니 이윽고 나른해지는, 바로 그 느낌이지요. 가위의 마찰음도 이발사의 따뜻한 손을 만나면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자장가가 돼 눈꺼풀에 매달립니다. 잠이 솔솔 옵니다.
 
하지만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의 미용실에서는 왠지 그런 느낌을 찾기 힘듭니다. 내내 울어대는 최신식 '바리캉'도 불편합니다. 제가 이발소만을 고집하는 이유죠. 어쨌든 이발을 마치고 나니,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이 왠지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발소가 이런 편안함과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지요. 다소 거친 이발사를 만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거친 이발사의 가위는 시퍼런 금속의 본성을 금세 되찾습니다. 더욱 예리해진 칼날은 목덜미를 위협하지요. 가위가 만들어내는 낯선 금속의 파열음이 고막을 파고듭니다. 심하면 귀와 목에 상처가 날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런 시간입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이발사를 만나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신년 벽두의 키워드는 '구조조정'이 될 듯합니다.
 
구/조/조/정. 불필요하게 자란 부분을 잘라내고 쓸 데 없는 부분을 깨끗이 정리한다는 점에서 '이발'과도 비슷하지만, 경제구조를 '마음 먹고' 정리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귀엽게 봐줬던 '애교머리'나 멋스럽게 기른 '구레나룻'까지 모두 싹둑 잘라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미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이들 분야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칼날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업종을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미 정부 핵심관계자는 "다른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수백명의 은행원들이 새로운 미래를 찾아 떠났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도 직원 감축 등 긴축경영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그 누군가가 말했던 "낫과 망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칼과 가위'가 우리를 겨냥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들 희망을 찾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발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어떤 이발사를 만나게 될지 다들 짐작하고 있지요. 당장 피해갈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그만 아팠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다들 10여년 전의 악몽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겨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만은 놓지 말아야겠죠.
 
날이 춥습니다. 옷깃을 여미세요. 기자는 기원합니다. 내년 정월에는 모두 말쑥하고 예쁜 얼굴로 다시 인사할 수 있기를.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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