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봄이기자] 조세회피를 합법으로 인정한 공인중개사 시험 문제에 수험생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인중개사시험을 치른 23회 수험생 일부는 6개월 동안 출제기관인 산업인력공단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준비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곧 올해 시험 접수가 시작되지만 피해구제 여부는 아직 불명확한 상황이다.
행정심판은 공인자격시험 결과 등 행정처분의 위법·부당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로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진행된다.
지난 5일 구술심리를 진행한 행정심판위원회는 수험생 측 전문가 의견을 보충해 다시 심리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후 수험생들이 약속한 2주 내에 전문가 의견을 제출했지만 심리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행정심판을 청구한 후 변호사의 도움 없이 행정심판을 진행하고 있는 수험생들은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몰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23회 공인중개사 수험생들이 지난 5일 서울 미근동 중앙행정심판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제공=23회 공인중개사 수험생 모임)
수험생 안모씨는 "해당 부서인 중앙행심위 국토해양 심판과는 일이 바쁘다며 구술심리가 무한정 연장될 수 있다는 통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행정심판 청구일로부터 최소한 90일 이내에 결과가 나오도록 한 규정이 있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다.
수험생 서모씨는 "공인중개사 수험생들은 중장년층에다 생업에 종사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수험생들의 억울함이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오류 논란에 휩싸인 문제 중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조세회피의 합법성 여부를 묻는 부동산학개론 A형 18번(B형 16번)이다. 부동산 조세에 관해 틀린 설명을 고르라는 문제의 정답이 보기 5번(절세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려는 행위이며, 조세회피와 탈세는 불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려는 행위이다)으로 처리된 것이다. 조세회피를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23회 공인중개사 시험 부동산학개론 A형 18번 문제
시험 직후부터 수험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뜨거웠던 이 문제는 최근 최근 고위공직자의 조세회피, 버진아일랜드 역외 탈세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세회피는 세법의 허점을 이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 행위로 과거에는 '합법적 탈세', 또는 '불법과 합법 사이에 있는 것'으로 통용됐다. 가장 대표적인 판결은 2009년 합법 판결이 나온 삼성 에버랜드 사건으로, 전환사채를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발행, 증여해 세금을 회피한 경우다. 당시 법원은 조세회피를 불법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민 법감정에 반한다는 비판과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인 바 있다.
수험생들은 "최근 조세회피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불법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추세"라며 "지난해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조세회피를 불법으로 본 판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험생 모임 대표 김모(31)씨는 "새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세회피를 합법으로 보는 문제가 국가시험에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조세회피가 불법이 아니라면 중개업을 할 때 고객에게 조세회피를 권하라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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