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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호랑이 등에 올라탄 청와대
임기말 이명박 정부, 검찰 품에 안기다?
2011-06-07 15:15:30 2011-06-16 18:26:37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적으로 국민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자 검찰은 사흘 뒤인 6일 김준규 검찰총장이 직접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청와대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이를 둘러싼 여론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 폐지 여부가 사실상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 검찰, 일단 여론화에 성공
 
적어도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검찰의 승부수는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국회 사개특위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를 논의하는 동안 이 주제는 여론의 관심을 크게 얻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중수부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기점으로 청와대가 검찰의 손을 들어 줬고, 부산저축은행에 예금을 맡겼던 피해자들 역시 검찰을 지지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수부 폐지에 합의해 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견해가 비등하고 있다.
 
사실상 청와대 지침이 내려온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수부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 또한 중수부 폐지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에도 그다지 인상적인 수사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2년간 별다른 수사를 하지 않고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던 대검 중수부로서는 부산저축은행이 '구세주'라고 해도 손색없는 상황이 되었다. (▶관련기사 6월 2일자 '잘 걸렸다 부산저축은행"..웃고 있는 중수부')
 
◇ 검찰 여론전은 자충수?
 
그러나 검찰의 승부수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다.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가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악(巨惡) 척결'이라는 명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힘 센 정치권력', 즉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통해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전 정권에 대한 비리로 몰아가는 데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2001년 국회의 입법을 통해 상호신용금고가 상호저축은행으로 변경된 것과 그 이후 상호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취급 허용 등 정책 결정에 대한 논란을 수사 대상으로 삼기에는 검찰이 떠안아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의 오류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도 힘들뿐더러,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 정권의 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부산저축은행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전 정권 실력자들의 비호가 있었는지가 드러나야 하지만,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을 보면 범죄로 몰아갈 수 있는 단서는 사실상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 ‘성공한 로비’로 수사 확대하나?
 
결국 검찰의 승부수가 먹히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권력', 즉 현 정권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대검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구속한 것을 제외하고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란한 수사에 비해 성과는 사실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김 전 원장은 아직 참고인 신분이다.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드러난 게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살아 있는 권력’, 즉 현 정권과 관련해서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서 수사 중인 삼화저축은행 사건에서 뚜렷한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말하는 ‘거악’은 대검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이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 자체만으로도 ‘거악 척격을 위해 중수부가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력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살아 있는 권력’, 특히 ‘성공한 로비’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저축은행 사건은 모두 영업정지된 사례다. 그렇다면 퇴출을 모면한 저축은행 가운데 ‘성공한 로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면서 “현재 영업중인 저축은행 가운데 분식회계와 ‘성공한 로비’를 통해 살아남은 저축은행이 있을 수도 있고, 이쪽이 대검 중수부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권 주변에서는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한 저축은행에 대해 검찰이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번 달 중순부터 발표되는 저축은행의 실적발표도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주변에서는 저축은행의 만연한 분식회계로 인해 실적 발표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설왕설래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회계법인의 부실 회계 검사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 청와대는 왜 검찰 편을 들고 나왔을까?
 
사실 이번 논란은 국회와 검찰의 힘겨루기였다. 그런데 청와대가 검찰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도 되는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6일 청와대의 김희정 대변인은 “정부 조직과 관련된 것이어서 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면서 “국회에서도 소위에서 결론이 났지 완전히 결론이 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회 사개특위가 1년6개월 동안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청와대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일까?
 
우선 임기 말 권력누수를 차단하기 위해 검찰의 힘을 빌려보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있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의 품에 안겼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은 “청와대가 검찰의 품에 안겼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 정부가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검찰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초기에 그 의도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가 구 여권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 정권을 이탈하려는 한나라당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고,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만 놓고 볼 때는 이런 분석이 맞아 들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7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청와대-검찰 규탄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자 하는 청와대와 검찰의 태도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 호랑이 등에 올라탄 청와대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 초기에 ‘청와대 하명에 의한 청부수사’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나돌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권력의 의지와 무관하게 검찰의 조직논리가 더 강하게 수사방향을 이끌어온 게 사실이다.
 
즉 국회 사개특위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검찰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강도가 더 강해졌고, 검찰은 대검 중수부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전 정권과 현 정권을 가리지 않고 수사를 한 것이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었던 ‘BBK 대책팀장’ 출신의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사실상 청와대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에 뛰어 들어 검찰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검찰의 자기 생존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사안에 뛰어든 청와대.
 
과연 검찰은 청와대의 의지대로 움직여줄까? 적어도 임기 두 달여를 남겨둔 김준규 현 검찰총장은 통제권을 벗어난 분위기다. 오는 8월 김 총장 후임에 어떤 인물이 기용될 것인지에 정치권과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스토마토 권순욱 기자 kwonsw8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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