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현민 기자] 집권 초 관세 협상 등 굵직한 대외 현안을 넘기며 순항했던 '실용외교'는 최근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은 가운데 한·미 관계 곳곳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대북 관계도 악화일로입니다. 한·중, 한·러 관계에도 불확실성이 남아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6월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 로얄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기념 음악회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세 '선방'에 광폭 행보…실용외교 시험대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정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얼어붙은 남북 관계 등 외교적 암초 속에서 출범했습니다. 집권 초기 최대 과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꺼내 든 관세 압박에 대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으로 첫 해외 정상외교에 나섰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일본을 찾아 셔틀외교 복원의 신호탄을 쐈고,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관세 협상에서는 한국산 제품에 적용되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달러(약 48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습니다. 최대 외교·통상 현안에서 급한 불을 끄며 실용외교가 첫 시험대를 넘겼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다자외교에도 속도를 냈습니다. 유엔총회와 아세안 정상회의,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소화했습니다. 경주 APEC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외교를 이어가는 동시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도 성사시켰습니다.
올해 1월에는 중국을 국빈 방문해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을 강조했고 일본과의 셔틀외교도 이어갔습니다. 문제는 외교의 외형 확대와 개별 현안에서의 실리 확보가 갈수록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지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대외 협상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국내 정치적 비용도 커졌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트럼프 '뒤끝'에 청구서만…대북·대중·대러도 뇌관
가장 큰 변수는 미국입니다. '선방'으로 평가받았던 관세 합의부터 다시 흔들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한국 국회의 대미 투자 합의 이행이 늦어진다며 한국산 자동차와 상호관세 등을 15%에서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압박했습니다. 합의 이후에도 투자 이행을 지렛대로 추가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결'이 곧 '종결'을 뜻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드러난 셈입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도 같은 맥락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500억달러(약 67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을 따져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이를 정치적 성과로 못 박고, 한국은 경제성을 따져야 하는 만큼 마찰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대 난제로 떠오른 건 호르무즈 파병 문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이후 한국 등 동맹국에 군사적 기여를 압박해 왔습니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 등 군사 자산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했고, 지난달 국방부 현지조사단은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작전 여건을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국내 반대 여론과 이란과의 관계를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동맹 관리'와 '국익' 사이에서 직접적인 선택을 요구받는 대목입니다.
한·미 안보 현안에서도 이상 신호가 이어집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5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찬성하면서도 북한의 군사 위협과 작전계획 변경 등에 따라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고 밝혔습니다.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 한·미 간 추가 조율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정보 협력 논란도 남았습니다. 미국의 일부 대북 정보 공유 제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한·미·일 북한 사이버 위협 협의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빠진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정부는 오해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입장이지만 강경화 주미대사가 국정감사에서 '정보 협력' 문제를 직접 거론하면서 우려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세·투자가 경제 갈등이라면 전작권과 정보 협력은 동맹 신뢰와 직결돼 부담이 더 큽니다.
대북 관계도 악화 일로입니다. 북한은 14일 동해에서 2종의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15일 밝혔습니다. 북한이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2023년 3월 이후 3년 7개월 만입니다. 최근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에 이어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남북 관계 복원 구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미 정상외교에 대한 기대 역시 한국에는 양날의 검입니다. 대화 재개는 긴장을 낮출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북·미가 직접 협상에 나설 경우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까지 유지돼 남북 대화는 요원한 상태입니다.
한·중 관계도 완전한 복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할수록 중국과의 관계 관리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 역시 잠재적 뇌관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극해 연안을 지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적인 협력에는 제약이 큽니다.
취임 500일을 맞은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는 이제 성과를 쌓는 단계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관세·투자·파병·전작권·정보 협력까지 한·미 현안은 전방위로 넓어졌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미·중·러 변수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결국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실제 선택의 순간에도 작동할 수 있느냐가 취임 500일 이후 외교의 성패를 가를 전망입니다.
이현민 기자 topef12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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