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중소 제조기업이 밀집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가 인공지능 전환(AX)의 '수평적 확산' 모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개별 공정부터 AI 기술을 적용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주변 기업으로 확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금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 제조기업의 여건을 고려한 전략입니다.
14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현재 반월·시화산단의 입주 기업은 약 2만2000개사입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99% 이상을 차지합니다. 서로 다른 업종과 공정이 한곳에 모여 있는 만큼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공급망을 따라 AX를 확산하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옵니다.
정부는 이 같은 중소 제조기업의 AX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AX실증산단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AI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시험하고, 그 성과를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반월·시화산단에서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을 중심으로 제조 AI 오픈랩과 대표선도공장, AX 종합지원센터 등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김태형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AX실증산단센터장.(사진=이하림 기자)
대기업 따라가는 '수직' 대신 이웃 기업으로 '수평 확산'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 AX실증산단센터의 김태형 센터장은 <뉴스토마토>와 만나 반월·시화산단의 산업구조에 맞는 AX 확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AX는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도입하면 협력업체들이 뒤따르는 수직적 확산 구조"라며 "반월·시화산단에서는 기업 간 수평적 확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전혀 관련 없는 기업들이 공간적으로 한 군데 몰려 있다가 옆집이 AX를 해서 우리 집도 AX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수평적 확산의 출발점은 개별 공정부터 AI를 도입하는 '셀 단위' 전환입니다. 대기업처럼 생산공정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대신, 중소 제조기업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특정 공정이나 작업부터 AI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김 센터장은 "여기(반월·시화산단)는 중소·영세 기업들이 많다"며 "프로세스 안에서 한 공정이나 특정 분야를 핀셋으로 뽑아내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은 공정에서 실제 개선 효과를 확인하면 기업이 스스로 다음 단계의 전환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500만원짜리 지원부터"…중소기업 눈높이 맞춘 AX
(그래픽=뉴스토마토)
김 센터장이 현장에서 확인한 중소 제조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본과 인력 부족입니다. 김 센터장은 "기업 입장에서 자본을 투자했을 때 투자 대비 수익(ROI)이 나오는지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AX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기업도 비용 부담과 성과의 불확실성을 호소했습니다. 반월·시화산단의 박범열 한국R&D 대표는 2022년부터 로봇 자동화와 제조실행시스템(MES) 구축에 나서 총 220억원을 투자하고 23대의 로봇을 도입했습니다. 박 대표는 "자동화 라인은 제품에 맞게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수십억 원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은 데스밸리를 맞이하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해 실시한 반월·시화산단 입주 기업 설문조사에서도 AX 추진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비용 부담(35.9%)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력 부족이 28.4%로 뒤를 이었고, 전문가 부재(9.8%)와 기술 이해도 부족(9.0%)도 주요 장애 요인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센터장은 중소 제조기업의 AX 전환을 위해 경영진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상당수 중소기업 대표가 생산 현장에서 직접 일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소규모 지원사업을 통해 AI 도입을 경험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김 센터장은 "이 산단에서는 5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짜리 소규모 지원사업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최고경영자(CEO)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센터는 기업별 수요에 맞춰 AI 솔루션 도입 지원과 생성형 AI 활용 교육, 제조 AI 오픈랩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9개 기업을 대상으로 AI 솔루션 도입을 지원했습니다. 지원 분야는 제조공정뿐 아니라 경영·생산관리와 데이터 수집 기반 구축 등으로 다양합니다.
기업별 AX 준비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 진단 체계도 마련했습니다. 공정 전문가와 AI 전문가가 제조 현장을 방문해 기업의 기술 활용 수준과 개선 과제를 살펴보고, 그 결과를 적합한 지원사업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올해 수준 진단 목표는 50개사로, 현재 약 30개사를 진행했습니다.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선 안 돼"
지난해 시작한 AX 실증사업은 올해 2차 연도인 구축 단계에 있으며, 내년 실증을 거쳐 2028년 확산을 추진하는 일정입니다. 김 센터장은 장비 구매를 위한 심의와 도입 이후 안정화 작업 등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진행이 늦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지원사업의 특성상 협약과 예산 집행 이후 장비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도 심의에 약 3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비 도입 이후에도 실제 제조공정에 맞게 작동하도록 안정화하는 과정 약 2~3개월이 추가로 소요될 수 있습니다. 김 센터장은 장비 심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절차 간소화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김 센터장은 실증사업의 성과를 단기간의 생산성 향상이나 비용 절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와 실패 사례 역시 향후 다른 제조기업의 AX 전환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입니다. 김 센터장은 "중소기업들이 AX를 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시행착오와 시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선도 공장과 지원사업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와 데이터가 다른 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실증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이를 정규 지원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증사업은 정말 의미가 있는 적기의 사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업이 되면 안 된다"며 지속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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