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15개월을 곰곰이 되짚어본다. 대통령은 '백척간두 진일보'를 외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하는데, 정작 고위 관료들의 움직임에서는 '자화자찬'과 '탁상공론', '태산명동 서일필'이 겹쳐 보인다. 산이 떠나갈 듯 요란했지만 정작 나온 것은 생쥐 한 마리라는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따지고 또 따져보면 결국 양봉음위(陽奉陰違)가 문제다. 겉으로는 대통령의 국정 방향에 호응하면서 실제 집행에서는 과거 방식과 관행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과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요즘 개각을 두고 '하면 말썽이고, 안 하면 더 말썽'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정치가 그렇다. 사람을 바꾸면 인사 논란이 생기고 그대로 두면 쇄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도 마찬가지다. 새 대표가 선출되면 으레 새로운 탑을 쌓겠다고 나서지만, 그것이 곧바로 대통령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당대표 한 사람이 잘해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는 사례를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대통령 지지율을 반등시킬 이슈는 무엇일까.
공소취소나 연임개헌 논란에 대통령이 직접 선을 긋는 것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북·미 정상 간 만남을 또 하나의 변수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한 정치적 변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민의 평가가 크게 움직일지는 의문이다.
지지율은 어느 한 사건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것 같지만 결국 밑바닥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평가가 깔려 있다.
정부는 출범 이후 경제성장전략의 대전환을 강조하며 지방과 2030 청년, 벤처·스타트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체감도가 너무 낮다.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부처와 기관들조차 기존 사업에 이름표만 새로 붙이거나 공급액을 늘려놓고 정책을 이행했다고 설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정책 방향을 실제 돈의 흐름으로 바꾸려면 평가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이라도 2027년도 기관 KPI와 경영평가의 배점 구조를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지방과 청년, 벤처·스타트업을 정말 우선하겠다면 기관들이 그 목표를 달성해야 높은 평가를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기관장의 구호가 아니라 조직의 KPI가 되어야 한다.
체감경제의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반도체 호황과 초과세수가 뉴스에 등장할 때 월세와 전세대출 이자, 생활비에 허덕이는 서민과 소상공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나라 경제가 좋아진다는데 정작 자신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면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이 오르고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국민 모두의 삶이 나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도 많고, 집값 하락이 당장 자영업자의 매출이나 청년의 월세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거시경제의 숫자와 국민이 지갑에서 느끼는 경제 사이에는 분명한 시차와 간극이 존재한다.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개혁 과제는 숱하게 많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들쑤실 필요는 없다. 반드시 해야 할 몇 가지를 골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조정 자체가 하나의 성과 사업이 되는 순간, 가장 손쉬운 방법인 인력 감축으로 흐르기 쉽다. 조직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어야지 사람 숫자를 줄이는 것이 개혁의 성과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정부가 총체적 난맥이나 사면초가에 빠진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실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지도는 유행이고 국정은 현실'이라고 애써 태연한 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안다. 이 방안에서 저 방안으로, 온탕에서 냉탕으로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결국 국정에도 오한이 든다.
필자에게 지지율을 단번에 반등시킬 특별한 묘책은 없다. 그런 재주가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허풍에 가깝다. 다만 어느 정부, 어느 시기에도 적용되는 몇 가지 명제는 말할 수 있다.
첫째, AI와 초연결의 시대를 사는 국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둘째, 정치의 알파와 오메가는 '대중을 기초로 하여, 실정에 맞게' 하는 것이다.
셋째,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긴다. 국민에게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있어야 사회에 대한 신뢰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생긴다.
넷째, 국정은 땅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걸어야 한다. 지면에서 50㎝쯤 떠서 다니기 시작하면 민생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대통령이 던진 '구조적 다수론'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누가 구조적 다수인가. 그들의 삶은 실제로 나아지고 있는가. 그리고 정부의 예산과 정책금융, 행정조직의 KPI는 정말 그들을 향하고 있는가.
딜레마를 계속 설명하는 정부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솔루션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국민이 서 있는 바로 그 땅바닥에서 시작하면 된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고문·K-정책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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