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유선 발달이 충분하지 않아 전시근로역 판정을 해줄 수 없다고 했어요.”
트랜스여성 이서현씨(가명)는 지난해 병역 처분을 변경하기 위해 수원지방병무청에서 받은 신체검사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해군을 만기 전역한 서현씨는 2023년 자신을 트랜스여성으로 정체화했습니다. 하지만 군 복무는 예비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제가 원하는 성별로 살고 있었는데, 원하지 않는 성별로 분류돼 남성 집단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19일 이서현(가명)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군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호르몬 치료 6개월 채워도…“유선 발달 부족”
서현씨는 이후 병역 처분을 전시근로역으로 변경하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병무청에 진단서와 호르몬 치료 기록, 종합심리검사 결과,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첫 신체검사에서는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지 못했습니다. 병무청이 요구한 6개월 이상의 여성호르몬 치료 기간은 이미 채운 뒤였지만, 유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5급 전시근로역은 평시에는 현역이나 보충역으로 복무하지 않고 전시에 군사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병역처분입니다. 전시근로역에 편입되면 예비군 훈련 대상에서는 제외됩니다.
마음이 급해진 서현씨는 호르몬 투여 방식을 먹는 약에서 주사로 바꿨습니다. 비용이 더 들고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했지만, 다음 검사에서도 자신의 몸이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서현씨는 대구지방병무청에서 두 번째 신체검사를 받은 뒤에야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판정은 2024년 2월 개정된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별표3 제102호의3(성별불일치)에 근거합니다. 기존 규칙은 성별 불일치자의 경우 6개월 이상 치료에도 군복무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전시근로역인 5급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규칙은 ‘6개월 이상의 이성호르몬치료 등을 받고,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나 신체적 변화로 군 복무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5급 처분이 나오게 강화됐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적 평가 등으로 성별불일치 상태가 확인된 사람의 경우는 4급 처분이 나옵니다.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으면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이 되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예비군에 편성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호르몬 치료 안 받자 4급…병역처분 법정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아 4급 판정을 받은 트랜스여성 장하늘씨(가명)는 현행 규칙에 불복해 2024년 1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늘씨는 2021년 7월 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3년 넘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학교와 일상에서도 여성으로 살아왔지만,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이 됐습니다.
하늘씨는 “군복무가 싫다는 게 아니다. 차라리 여성으로 복무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며 “사회복무요원이든 군대든 남성으로 여겨지면서 생활할 수는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무엇보다 의료적 선택인 호르몬 치료가 병역 처분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된 데 반발했습니다. 하늘씨는 “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생식능력도 줄어들고, 신체적 변화가 크다. 그렇기에 개인이 신중히 고민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으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강요 때문에 원하지 않는 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 ‘국가가 왜 내 몸에 간섭하느냐’는 부당함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소송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월 하늘씨가 낸 병역 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사 규칙에 따라 하늘씨에게 신체등급을 부여하는 건 병무청의 재량 판단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현재 하늘씨는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성별정체성, 호르몬 치료 이력과는 무관해”
의료계에서는 ‘6개월’에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성별 확정 호르몬 치료를 진료하는 최예훈 색다른 의원 원장(산부인과 전문의)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호르몬 치료로 증명할 수는 없다”며 “6개월이라는 기간은 군이 정한 기준일 뿐 의학적으로 나온 근거가 아니다. 신체 변화도 사람마다 다른데 이를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 역시 근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6개월’을 산정하는 방식도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약을 복용한 기간이 아니라 단순히 매달 병원을 방문했는지가 치료의 연속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 원장은 “먹는 호르몬제는 병원을 매달 방문할 필요 없이 3개월분씩 처방할 수 있다”며 “그런데 매달 내원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6개월의 연속적인 치료 이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진료기록을 만들어 오라는 요구를 받은 환자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에서 약을 꾸준히 복용했는지가 아니라 병원에 매달 출석했는지를 확인하는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호르몬 치료는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과정도 아닙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트랜스젠더 혐오차별실태조사’에서 응답자 589명 가운데 52.8%는 호르몬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한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과 개인적 필요, 건강 문제가 꼽혔습니다.
실제 미국정신의학회(APA)가 발행한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역시 호르몬 치료를 성별 불일치 진단의 필수 요건으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성별 불일치는 개인의 지속적인 성별정체성을 바탕으로 진단하는 것이지 호르몬 치료 기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행 검사 규칙은 법률의 근거 없이 특정 의료 조치를 사실상 강제해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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