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가슴이 나온 상태에서 다른 예비군들과 같이 샤워해야 했어요."
트랜스여성 김선우씨(가명)는 여성호르몬 치료로 신체 변화를 겪은 뒤에도 예비군 훈련에 소집돼 2박3일 동안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샤워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선우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지정성별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20대 초반엔 경제적 기반도, 의료 접근성도 부족해 어디서 어떤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2018년 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2022년 3월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방면에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광고가 게시됐다. (사진=뉴시스)
선우씨가 여성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것은 전역 후 수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전역 후에도 예비군 훈련이라는 장벽이 남아 있었습니다. 현행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제102조 3항에 따르면, 성별 불일치 진단을 받고 6개월 이상 호르몬 치료를 받은 사실 등을 증빙하면 병역 처분을 5급 전시근로역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받았을 당시 선우씨는 병무청이 요구하는 치료 기간과 증빙 서류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서류를 준비하는 사이 훈련 입영일이 먼저 다가왔고, 결국 그는 호르몬 치료로 신체가 변한 상태에서 예비군 훈련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선우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선우씨는 상당수 트랜스여성이 정보 부족이나 의료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정체성을 숨긴 채 남성으로 입대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군대에 가야 하는 20대 초반에는 경제적 기반이 부족하고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병역판정 전에 필요한 진단과 치료를 마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결국 참고 입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병역의무가 본격적으로 부과되는 20대 초반은 많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거나 트랜지션(트랜스젠더가 성별 위화감을 해결하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부합하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한 전환 과정)을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별 불일치 진단이 가능한 의료기관조차 턱없이 부족합니다. 비수도권의 경우 전문 진료가 가능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지 못해 서울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종합심리검사 비용만 40만~50만원 안팎입니다. 지속적인 호르몬 치료비와 수술비까지 더해지면 경제적 부담은 극에 달합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선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된 응답자 259명 가운데 109명(42.1%)이 군복무 중이거나 군복무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호르몬제 반입하려면 원치 않는 커밍아웃
복무 중 호르몬 치료를 병행한 트랜스여성의 사례도 있습니다. 성주은씨(가명)는 대학원 진학 후 전문연구요원을 신청한 뒤 여성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중단하고 병역 처분을 다시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소속 기관장(지도교수)에게 관련 사유가 전달돼 성별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우려한 겁니다. 이에 주은씨는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연구요원 기초 훈련을 받는 훈련소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성호르몬 주사는 입소 직전에 맞아 투여 주기를 조정했지만, 이틀에 한 번 먹는 약은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약을 반입하려면 성분과 복용 사유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별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고서는 치료를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주은씨는 "부당하다고 느꼈어요"라며 "당뇨가 있는 친구는 인슐린 주사를 반입할 수 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호르몬 치료 중단이 고통스러웠지만, 약을 반입하려면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하니까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샤워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곳에서 어떻게 제 정체성을 밝힐 수 있겠어요"라고 토로했습니다.
김재희씨가 2026년 민방위 훈련을 이수하고 받은 증서. (사진=김재희씨 제공)
성별 정정한 트랜스남성, 5년간 221명 달해
이런 문제는 트랜스여성만 겪는 게 아닙니다. 트랜스남성은 반대편에서 또 다른 병역의 모순과 마주합니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 제136조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에 성별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된 사람은 별도의 병역판정검사 없이 5급 전시근로역에 편입됩니다.
26일 병무청이 <뉴스토마토>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성별 정정을 사유로 5급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은 사람은 모두 22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연평균 44.2명입니다. 연도별로는 △2021년 46명 △2022년 53명 △2023년 46명 △2024년 39명 △2025년 37명입니다.
김재희씨(가명)는 20대 초반 법원에서 성별 정정 허가를 받은 뒤 병무청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직접 문의를 한 뒤에도 한참 동안 별다른 안내를 받지 못하다가 그해 말이 되어서야 절차가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5급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선 병역면제를 받은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재희씨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건강했음에도, 성별을 정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겁니다."
트랜스남성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취업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병적증명서 등을 요구하는 직장에선 현역이나 보충역으로 복무하지 않은 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성별 정정 사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트랜스젠더의 병역 문제를 단순히 '군복무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단편적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자발적 지원인 직업군인(간부)과 병역의무로 입영한 병사의 법적 지위와 권리는 성격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박한희 변호사는 “지원해서 직업군인이 된 간부와 병역의무에 따라 입영하는 병사의 문제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며 “간부에게는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직업을 선택하고 유지할 권리, 트랜지션 이후에도 복무를 계속할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채 군에서 복무하는 트랜스젠더 병사들이 존재하는 만큼, 이들이 차별과 괴롭힘에 노출되지 않고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보장받으며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 용어 설명: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기사에선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을 트랜스여성(Trans women)으로, 지정된 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는 트랜스남성(Trans men)으로 표기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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