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와 밸류업을 기치로 내걸고 불건전 기업 솎아내기와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 근절에 칼을 빼들었습니다.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으나, 현장에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등 특정 섹터로의 쏠림과 극심한 수급 가뭄 속에서 억울하게 주가가 짓눌린 우량 혁신 벤처들마저 일률적인 시가총액 잣대와 징벌적 과세 폭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세법 개정안의 맹점과 역설을 짚어보고, 넉넉한 유예기간과 다층적 퇴로(안전망)를 마련한 미·일 등 해외 선진 시장과의 비교를 통해 기계적 퇴출 제도의 한계를 진단합니다.(편집자 주)
[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정부가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를 막겠다며 상속·증여세 과세 강화에 나섰지만, 구조적으로 저평가된 우량기업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일부 잡초를 제거하려다 옥토까지 태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3일 2026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고의로 낮춘 이른바 ‘주가 누르기’가 확인되면 해당 주식의 평가액을 높여 과세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개편안에 따르면 최근 6년 6개월 중 12개 반기에 걸쳐 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거나, 최근 1년간 중복상장 혹은 교환사채 발행 등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행위를 한 이후 시가가 최근 3년 대비 30% 이상 하락한 기업의 최대주주 보유 주식이 심의 대상이 됩니다. 주가 누르기로 판단되면 ‘최근 6개월~6년 6개월간 평균 종가’와 ‘현행 평가액의 1.3배’ 중 큰 금액을 적용하되, 납세자가 고의성이 없음을 소명하면 현행 방식을 유지합니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는 여러 부작용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먼저 대형주 쏠림으로 수급에서 소외된 우량기업까지 대주주의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 사례로 오인돼 잠재적 조세회피 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최근의 저평가에 대해 “개별 기업의 실적이나 재무 문제보다 거래가 소수 종목에 집중되면서 나머지 상장사에 자금이 흐르지 않는 시장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수급 쏠림이 만든 저평가…기업가치 반영 어려워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한국거래소의 코스피 종목별 거래대금을 분석한 결과, 올해 첫 거래일 대비 지난 4일 거래대금 상위 10개 종목의 하루 거래대금은 16조8822억원에서 19조8839억원으로 17.8% 증가했습니다. 반면 하위 500개 종목의 거래대금 합계는 2394억원에서 873억원으로 63.5% 감소했고, 상위 10개 종목과의 격차는 70.5배에서 227.7배로 확대됐습니다. 같은 기간 자기주식을 제외한 시가총액이 감소한 코스피 상장사도 전체 800개사 가운데 676개사로 84.5%에 달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실적과 재무 상태가 양호한 기업이라도 거래가 형성되지 않으면 주가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수급 편중으로 형성된 PBR을 기준으로 대주주의 의도를 추정할 경우 시장 구조에서 비롯된 저평가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시가주의 흔드는 과세평가에 일반주주 피해 우려
한편 실제 재산가치보다 높은 금액에 과세하는 역전 현상과 함께 현행 ‘시가주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현행 상증세법은 상속·증여재산을 평가 기준일 현재의 객관적 교환가치인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안에 따라 과거 주가나 가산된 금액을 기준으로 삼으면, 납세자가 실제로 취득한 가치와 세금 산정 기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 부회장은 “평가액이 실제 시장가격을 웃돌 경우 상속인이 주식을 처분해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은 세금이 산정될 수 있다”며 “세금을 마련하려면 처분해야 할 주식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대주주 지분의 대량 매각이 주가를 추가로 끌어내려 일반주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도 시장가격은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라며, 이를 무시한 채 임의로 법적인 기준을 세워 평가하는 것은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습니다.
보완입법 나선 국회…수정 요구 확산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5일 국회에서는 정부의 주가 누르기 방지 대책을 보완한다는 취지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상속·증여세 평가 하한을 상장주식의 시가가 아닌 세법상 순자산가치의 80%로 명확히 했습니다. 또 상장 자회사와 손자회사 주식에도 같은 평가 방식을 단계적으로 적용해 지배구조를 통한 가치 훼손을 막도록 했습니다. 다만 자본잠식이나 회생절차, 구조조정 등의 사유로 주가가 하락한 기업에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했습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인위적인 주가 누르기가 아니라 경영상 불가피한 사유로 주가가 하락한 기업에는 예외를 적용하도록 해 법안의 합리성을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일부 주가 누르기 사례를 전제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주가 저평가 논란을 낳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가는 시장 수급과 투자자의 판단, 국내외 경제 상황에 따라 형성되는 만큼 특정 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춰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도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주식시장에 올바른 신호를 주도록 수정·통과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안을 둘러싼 수정 요구가 여당 내부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재정경제부 주가누르기 방지법 전면 재검토 촉구 및 주가누르기 방지법 대표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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