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기업들이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유연근무제 도입을 공시한 기업 3곳 중 1곳은 이를 이용한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산율 반등을 보이고 있지만 기업 현장의 실질적 변화 없이는 저출생 반전은 지속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9일 싱크탱크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1877개 기업 중 657개사(35%)는 이를 이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연근무제는 육아기 노동자뿐 아니라 가족 돌봄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임직원 전반의 노동 유연성을 확보해 주는 핵심 수단입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규정집에만 존재하는 ‘전시용 제도’로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2026년 7월8일 서울 을지로1가 사거리에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육아휴직 대상자가 이 제도를 사용한 ‘우수 기업’은 341개사(17%)에 그친 반면, 대상자가 있음에도 쓰지 못한 ‘미사용 기업’은 441개사(22%)로 나타났습니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 현상도 뚜렷합니다. 종합 평가 상위 10%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평균 48.62%로 하위 10% 기업(25.80%)보다 두 배 가까운 격차를 보였습니다.
또 유연근무의 경우 상위 33% 기업들은 직원 1000명당 사용자 수가 580.3명에 이르지만 하위 기업은 272.4명에 불과했습니다. 평가 대상 300개 기업의 100점 만점 기준 평균 점수는 51.1점으로 전반적인 인구 위기 대응 수준은 여전히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산업군에 따른 편차도 명확합니다. 출산·양육 지원 부문에서 자금력과 안정적인 제도를 구축한 ‘은행·보험업’이 평균 59.5점으로 전체 산업군 중 1위였습니다. 반면, 현장 중심의 교대근무 체제와 고정된 노동 구조를 가진 ‘운수·창고업’은 평균 44.5점에 그쳤습니다.
다만, 세부 평가 항목 중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여성 중심의 ‘출산·양육 단계 지원’은 각각 64.5점, 64.1점으로 비교적 안정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남성 배우자 출산휴가 장려·의무 육아휴직 제도를 포괄하는 ‘배우자 지원(남성 육아 참여)’ 영역은 21.4점으로 최하점을 기록했습니다.
2026년 4월30일 서울 강남구 코에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를 찾은 참관객이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일과 가정 중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근무 방식 자체를 바꿔주는 유연근무제이며 일터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출산율 반등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고 있지만 단순히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보단 맞춤형 ‘시간 주권’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신우진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부교수는 노동정책연구를 통해 “여성은 노동시간의 효과가 약하거나 제한적으로 확인돼 돌봄·가사 등의 시간 외적 제약과 구조적 요인이 작동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며 남성은 장시간 노동 탈피를 통한 여가 확보가, 여성은 가사 분담을 전제로 한 시간적 유연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어 “비임금근로자와 비정규직에서는 소득 경로가 약해 장시간 노동이 삶의 만족을 악화시킬 위험이 더 크게 나타났다. 이는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는 정책과 함께 장시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소득 및 사회보장 정책이 결합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3년 3월6일 서울 중구 시청 앞에서 직장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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