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총 4755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1500조원 규모의 3대 메가프로젝트와의 차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두 그룹이 정부와 달리 기존 투자와 신규 투자를 모두 포함해 투자 규모를 산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 계획이 제시되면서 재원 마련 방안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업계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투자인 만큼 재무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기존 수도권 투자와 해외 투자까지 고려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대규모 투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을 잃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 발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액 차이?…“기존 계획 포함”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총 2655조원, SK그룹은 총 2100조원의 중장기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규모인 1461조원과 차이가 큽니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생산 거점 800조원, 충청권 HBM(고대역폭메모리) 패키징 거점 81조원,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550조원,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 30조원 등 지방 투자 중심으로 투자 규모를 산정했습니다.
반면 삼성과 SK는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단위의 투자와 반도체 외 AI 데이터센터, 디스플레이, 배터리, 에너지 등 계열사 투자까지 포함한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삼성은 ‘2026~2040년 국내 투자 비전’을 통해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2030조원을, 호남·충청·영남에 62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SK는 SK텔레콤의 약 1000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SK하이닉스의 1100조원 규모 AI 메모리 생산벨트 구축 계획 등을 담은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역별로 SK하이닉스는 용인(600조원), 청주(100조원), 호남권(400조원)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간 투자 규모가 차이가 난 이유는 집계 범위의 차이와 더불어 기존 투자 확대 계획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 투자가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반도체 공장(팹) 건설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 투자 규모가 확대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어제 진행된 3대 메가프로젝트 설명회는 서남권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전국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자리”라며 “국가 전역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이다 보니 양사의 기존 투자처인 용인 등이 포함돼 전체적인 규모를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 단계적 투자…SK, 외부 수혈도
두 그룹이 과감한 대규모 투자를 결단한 만큼, 업계는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삼성은 총 2655조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재원 조달 방식은 별도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서는 그룹의 현금창출력과 기존 투자 기조를 고려하면, 자체 영업현금흐름을 중심으로 단계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SK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략적 파트너 투자, 글로벌 고객의 장기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자체 투자와 함께 외부 자금도 적극적으로 수혈하겠다는 계획으로 읽힙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전날 국민보고회에서 “향후 10년간 평균 (매년) 10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를 집행하겠다”며 “SK는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해 실행 가능한 파이낸스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단기간에 집행되지 않고 10년 이상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재무 부담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워낙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지금 투자 진행 시점과 방식을 확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시장 환경과 사업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고객들과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투자를 진행한다면 재원 조달과 투자 집행에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다만 두 그룹의 대규모 투자 방안에 대해서는 실제 연도별 투자 규모와 신규 투자 비중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부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3500억달러(약 54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프로젝트까지 진행해야 하는 만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투자를 병행하면서도 해외 투자까지 고려한 세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기존 투자가 제대로 집행되는 것을 전제로 추가 투자가 진행되는 게 올바른 수순”이라며 “어제 발표 내용을 보면 투자 세부 집행 등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된 것은 아니어서 재원 마련에 대한 추가 세부 발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권마다 투자 반복…연속성 챙겨야
특히 정권마다 추진된 대규모 사업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은 지난 2019년 ‘AI 국가 전략’, 2021년 ‘K-반도체 전략’, 2022년 ‘12대 국가전략기술’ 등을 발표하며 반도체, AI, 배터리 등 첨단 산업 육성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다만 정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발표될 때마다 인허가, 전력·용수 등 인프라 확보는 과제로 떠올랐고,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조성 계획을 발표한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허가와 기반 시설 문제로 2020년대 중반 1기 팹 착공에 돌입했습니다. 홍 교수는 “해외 투자국들도 자국에 직접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권마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시키는 것은 기업의 경영 안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정부의 ‘팔 비틀기’가 아닌 기업의 자체적인 판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 투자 발표는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팔이 비틀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라며 “기업 투자는 다각도로 검토해서 진행하는 것이지, 생존권을 걸고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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