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금주 기자]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든 미국과 이란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원유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초반대로 내려왔습니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공급가격과 소비자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데다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도 여전해 공급망 '탈중동'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 설치된 유가 정보판. (사진=연합뉴스)
유가에서 물가까지…드러난 중동 의존의 대가
이번 전쟁은 우리 경제의 높은 중동 원유 의존도에 따른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실제 전쟁 기간 우리나라는 전방위적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았는데요. 기름값 상승이 대표적입니다. 전쟁 기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며 급등했고, 국내 기름값도 덩달아 상승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전쟁 발발 이후 지난 3월 13일 0시부터 원유 공급가격 통제 제도인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가격 안정에 나섰지만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며 소비자 부담을 키웠습니다.
간접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류비와 운송비 상승이 누적되며 물가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2026년 5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 따르면 수입물가지수는 3월부터 5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20%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지난달 3.1%를 기록하며 심리적 저항선인 3%를 넘어섰습니다. 또 반도체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중동발 충격은 국내 경제의 성장 흐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밖에 항공업계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유류할증료는 전쟁 이전인 2월 대비 5배 수준까지 치솟으며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적용됐고, 일부 저비용항공사(LCC)는 예약 취소와 수요 감소를 겪었습니다. 석유화학 원료 가격 상승으로 플라스틱 제품 공급 차질 우려가 제기되면서 쓰레기봉투와 일부 의료용 소모품 수급 불안도 나타났습니다.
중동산 에너지 수급 불안, 아시아가 가장 취약…한국은 일본 다음
이 같은 충격의 배경에는 높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있습니다. 산업연구원(KIET)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일본이 90~95%로 가장 높았고 한국은 약 70% 수준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중국은 이란산을 제외할 경우 약 42%, 대만은 국영에너지기업인 대만중유공사(CPC) 발표 기준 약 35% 수준으로 집계됐습니다.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대만과 중국이 약 30% 안팎, 한국은 20% 수준, 일본은 6~11%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미국 이란 전쟁 과정에서 타격이 컸던 건데요. 다만 원유 의존도에 비해 LNG 수입선은 상대적으로 다변화돼 있어 이번 전쟁의 충격이 일부 완화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았던 이유는 중동 원유가 가성비가 좋고 우리나라 석유화학 사업 용도에 더 맞다"며 "중동산 석유는 중질유로 가공하지 않아도 바로 쓸 수 있는데, 미국은 경질유라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LNG는 기술적으로 비축이 어려워서 원유보다 더 문제가 됐을 수 있다"면서도 "중동 전쟁의 여파로 LNG가 원유에 비해 비교적 문제가 적었던 이유는 한국의 LNG 수입 경로가 다각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드러난 한계…'탈중동 공급망' 숙제
정부는 전쟁 이후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중동 외 지역에서 원유를 확보하고 비축유를 활용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정유·석유화학 공정 상당수가 중동산 중질유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미국산 등 다른 원유를 대규모로 들여오더라도 즉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축유를 활용한 석유 스와프 역시 단기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강 교수는 "전쟁의 영향으로 물류비용이 높아졌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도 남아 있어, 중동발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에너지 수입선에서 중동산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관세협상을 하면서 한국이 에너지를 수입하겠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1000억이 넘는 수준"이라며 "관세협상 때문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해야 하는 측면도 있으니 정부는 능동적으로 미국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빙 연구원은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는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나프타는 중동에서 수입하는 물량에 더해 원유를 정제해서 만들던 물량이 합쳐져 (중동 영향을 받은) 양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렴한 중동산 물량을 유지하면서 석유 사업 고도화에 집중해 가격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아니면 공급 안보 측면을 더 강조해, 비축유 등 석유화학 산업과 관련이 없는 곳에 다른 국가에서 들여오는 비중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등 장기적인 에너지 믹스 전략을 통해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의 회복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편 석유 사용량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강 교수는 "석유 사용량 자체 줄여야 한다. 수력·화력·원자력 등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쓸 건지 에너지 믹스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지속 가능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에너지저장 장치 수요가 늘어날 전망으로 이런 부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윤금주 기자 nodrin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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