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나 5월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우리 고향 마을 어귀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곤 하죠. 머리 위에 화려한 깃털을 쫑긋 세운 모습이 꼭 인디언 추장의 장식 같아서 우리가 흔히 '추장새'라고 부르는 후투티 입니다. 동남아의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이 녀석들은, 오직 소중한 2세를 번식하기 위해 다시 우리 곁을 찾습니다.사실 후투티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참 귀한 몸이에요. '1과 1종'이라고 해서 일가친척도 없이 오직 후투티 하나뿐인 아주 독특한 가문이거든요.
후투티 어미가 김포시 한강변 노거수 구멍속에서 부화한 새끼들에게 사냥해온 땅강아지를 건네주고 있다.
후투티가 오면 마을의 고목이나 농가 처마 밑은 금방 소란스러워집니다. 빈 구멍을 차지하려는 눈치 싸움이 아주 치열하거든요. 발 빠른 녀석이 명당을 차지하면 나머지는 아쉽지만 다른 마을로 발길을 돌려야 하죠. 둥지를 틀고 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땅강아지 사냥'이 시작됩니다. 길고 뾰족한 부리로 밭을 콕콕 찌르며 해충을 잡아먹는 모습은 농부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꾼의 모습이기도 해요. 예전에는 뽕나무 주변에서 오디를 먹으러 오는 벌레를 잘 잡는다고 해서 '오디새'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연두빛 신록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5월 중순이면 마을의 고목 구멍에서 후투티 새끼들이 얼굴을 내밉니다. 암수가 똑같은 후투티 어미들은 밭을 파헤쳐 잡은 땅강아지를 수시로 공급하지요. 어미를 닮아가는 새끼들이 나무구멍 사이로 얼굴을 내밀 때는 언제든 둥지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둠 컴컴한 둥지 속에서 부화해 어느 정도 자란 상태랍니다. 어미들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먹이를 전달하지 않고 보여만 주면서 밖으로 유인하죠.
재미있는 건 이 녀석들이 겉모습은 참 우아하고 화려한데, 뜻밖에 둥지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는 점입니다. 지저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족제비나 고양이 같은 무서운 천적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스스로 악취를 내뿜어 가족을 지키는 기발한 생존 전략이죠. 이런 지혜로운 모습 때문인지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등장하고, 성경이나 이스라엘의 국조로 추대될 만큼 역사적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경북 영주 부석사 느티나무에 둥지를 튼 후투티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날아가고 있다.
사실 후투티와 얽힌 웃지 못할 옛날이야기도 하나 있어요. 1980년대 중반쯤이었을까요? 당시 한 통신사에서 후투티 사진을 찍어 '세계적인 희귀종이 나타났다'고 기사를 보내자, 온 나라 언론들이 검증도 없이 대서특필 했던 해프닝이 있었죠. 사실 우리 농촌에서는 꽤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는데도 말이에요. 돌이켜보면 그만큼 당시 우리가 자연생태에 대해 참 순진하고도 무지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엉뚱한 오보 덕분에 역설적으로 후투티라는 새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참 묘한 인연이죠.
세월이 흘러 요즘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모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탐조가 힙한 취미로 떠오르고 있다더라고요. 예전에는 중장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탐조가 이제는 젊은이들이 쌍안경과 고성능 카메라를 메고 숲을 찾는 '슬로우 라이프'의 상징이 된 거죠. 스마트폰 대신 렌즈 너머로 후투티의 우관이 펼쳐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자연과 교감하며, '물멍' 대신 '새멍'을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생태적 감수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무작정 '희귀종'이라고 열광하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평범한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수준 높은 문화가 자리 잡은 셈이에요.
그런데 이런 열기 속에 후투티들도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나 봅니다. 원래는 찬 바람이 불면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데, 요즘은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겨울에도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경주나 울산 같은 남부 지방에서 아예 겨울을 나는 '텃새' 개체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굳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내년 번식지를 미리 선점하려는 녀석들의 똑똑한 선택일지도 모르겠어요.
안타깝게도 서식지가 사라지고 농약 사용이 늘면서 후투티가 마음 놓고 먹이를 찾을 땅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들을 아끼고 관찰하는 젊은 눈들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4~6개의 알을 낳아 암수가 정성껏 교대로 새끼를 키워내는 그 지극한 정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 예쁜 추장새의 보금자리를 조금 더 세심하게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따뜻한 봄날, 느티나무 아래에서 인디언 추장 장식을 뽐내며 밭을 누비는 후투티를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오래도록 반갑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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