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일각에선 선거 무효 가능성까지 언급됩니다. 다만 법조계 의견은 일각의 관측과 결이 다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관리가 위법했다는 지적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선거 무효와 재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중론입니다. 선관위 잘못이 선거 결과를 뒤바꿀 만큼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충북 청주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일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함 2개가 아직 개표장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당 투표소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성난 시민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투표소를 에워싸고 투표함 반출을 막고 있어서입니다. 이로 인해 약 2000표가 미개표 상태로 남아 해당 지역의 당선인 확정 절차도 전면 중단됐습니다.
이번 사태는 6·3 지방선거 본투표 당일인 지난 3일 잠실7동 제2투표소를 비롯 수도권 14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로 인해 대기표를 받은 사람에 한해선 투표 마감 시각인 오후 6시를 넘겨서까지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대기표를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시민들이 속출하자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아울러 선관위의 이번 선거 관리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투표 마감 시간을 임의로 연장한 점, 투표용지 인쇄일이 지나 추가 인쇄한 점, 일부 지역에서 투표가 끝나지 않았는데 개표를 시작한 점 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선거 무효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공직선거법 224조(선거무효의 판결 등)에 따르면, 선관위나 법원 등은 선거 쟁송에 있어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이 있는 때라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 선거의 전부나 일부의 무효를 결정하거나 판결합니다.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 당락을 좌우할 상황이나 규모가 아니라면 선거 효력은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99년 대법원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대해서 "선거에 관한 규정의 위반이 없었더라면 선거의 결과, 즉 후보자의 당락에 관해 현실로 있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인정되는 때"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선거 무효의 기준점이 된 이 판례는 이번 사태가 터진 송파구의 시의원 선거 무효 확인 소송에서 비롯됐습니다.
선거법 전문가인 이상영 변호사(법무법인 JR)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해당 투표소에서 투표가 아예 무산된 게 아니라 일부 용지가 부족했던 것"이라며 "현재까지 서울시장 선거 개표 결과 당락이 바뀌지 않을 만큼의 격차가 존재한다. 선관위와 법원 모두 이를 선거 전체를 무효화할 만큼 중대한 하자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한 2021년 독일 베를린 선거 무효 및 재선거 사례 역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의견입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베를린 선거의 경우 선거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점이 드러났고, 우리는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을 뿐"이라며 "물론 유권자 개인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손상이지만 선거가 무효될 정도는 아닌 걸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섣불리 선거 무효를 주장해선 안 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상영 변호사는 "선거 관리가 무결하면 가장 좋겠지만 일부 결함이 발견됐다고 선거 전체를 뒤흔드는 건 헌법적 관점에서 매우 극단적인 경우"라며 "낙선한 후보가 결과에 승복한 건 민주주의 가치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선거 관리 부실과 국가기관의 실책으로 인해 시민들의 참정권이 침해된 만큼,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투표사무원의 위법 행위나 과실로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사 사례에서 법원은 피해 시민들에게 50만원에서 200만원 선의 위자료 지급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