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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적은 자본으로 도시를 설계하던 디벨로퍼(시행사)는 이제 시장 불안이 닥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축이 됐다. 저금리와 분양 호황기에는 자기자본 3~5%만으로도 수천억원대 사업을 굴리는 '효율의 모델'로 통했다. 그러나 시장이 꺾이자 이 방식은 곧바로 취약성으로 돌아왔다. 금리 상승과 공사비 급등, 분양 침체가 한꺼번에 덮친 데다 대출 규제, 분양가 통제, 인허가 지연 등 정책 변수까지 겹치면서 사업 자체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자금줄은 막히고 일정은 밀리며 수익성은 불확실해진 흐름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연명 단계에 들어선 디벨로퍼들의 현주소를 짚고, 왜 이들의 사업 방식이 침체기에 가장 먼저 균열을 드러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국내 디벨로퍼(시행사) 산업이 기존의 '분양 중심'에서 '운영 중심'으로 구조 전환 압박에 직면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토지를 매입한 다음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일으키고, 이후 분양으로 이어지는 기존 고레버리지 모델이 분양 경기와 금리 환경에 따라 수익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는 한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이어진 분양시장 침체와 맞물리면서, 일회성 수익에 기대온 사업 모델의 취약성이 한층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자산을 보유·운영하며 임대 수익 등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리츠·펀드 등을 활용해 자본과 리스크를 분산하는 '운영형 디벨로퍼'로의 전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케이스퀘어 데이터센터 가산 (사진=코람코자산신탁)
분양 의존 구조 흔들…실적 감소로 드러난 디벨로퍼 한계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주요 디벨로퍼들의 지난해 실적은 전반적인 위축 흐름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우선 업계 1위로 꼽히는 엠디엠은 매출이 2024년 3113억원에서 2025년 1118억원으로 급감했고, 디에스네트웍스도 7450억원에서 4924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외에도 신영은 매출이 2024년 3677억원에서 2025년 2162억원으로 감소했고, 대원 역시 2771억원에서 1121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시티코어도 43억원에서 41억원으로 소폭 축소됐다. 분양 일정 지연과 사업 축소가 맞물리며 외형이 일제히 줄어든 것으로, 분양 중심의 수익구조 취약성이 수치로 확인되는 대목이다.
국내 디벨로퍼 산업은 오랫동안 분양 수익에 의존해 온 탓에 프로젝트 성패가 분양 시점과 시장 심리에 과도하게 좌우돼 왔다. 분양이 잘 될 때는 단기간에 높은 이익을 올리지만,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분양이 지연되면 곧바로 현금흐름이 막혀 사업 전체가 흔들렸다. 분양 수익 자체가 일회성이며 경기·금리·정책 변화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만큼 이 위에 과도한 PF 레버리지를 얹으면 경기 사이클이 꺾일 때마다 유동성 위기와 대규모 부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유·운영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리츠와 펀드 등을 활용해 자본을 분산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운영형 디벨로퍼'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되며, 개발에서 운영까지 이어지는 사업 구조 재편이 본격적인 과제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스타필드 수원 (사진=신세계프라퍼티)
시작부터 운영·운용형으로 설계된 '선도 2.0 모델'
신세계프라퍼티, 이지스자산운용, 코람코자산신탁, 신영 등은 시작부터 개발 이후의 운영·운용까지 염두에 둔 구조를 갖춘 플레이어들이다. 단순 분양을 통해 사업을 종료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산을 직접 보유하거나 리츠·펀드에 편입해 장기적으로 수익을 회수하는 모델을 전제로 사업을 설계해 왔다.
특히 개발 단계에서부터 리츠·펀드·신탁 등 금융과 결합한 자산을 시장에 다시 유통시키고, 이를 통해 자본을 회수하면서도 운영 수익은 유지하는 '이중 구조'를 만들어낸 점이 특징이다. 가령 신세계프라퍼티는 그룹 내 유통·리테일과 결합된 운영 역량을, 이지스자산운용과 코람코자산신탁은 대규모 자산을 흡수·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신영은 장기 보유를 감내할 수 있는 자본 기반을 각각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디벨로퍼 2.0'을 선제적으로 구현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이 뒤늦게 운영형 전환을 요구하는 지금, 이들 모델은 더 이상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 이미 작동이 검증된 레퍼런스에 가까워 향후 디벨로퍼 산업이 수렴할 구조를 선행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람코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코람코는 최초 부지 매입 단계부터 개발 목적물과 투자자 유치, 금융 구조를 함께 설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업무 비효율과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할 수 있다"며 "부동산신탁과 펀딩, 투자, 운용 등 기능별 전문성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초대형 복합개발과 데이터센터 등 신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케이스퀘어 데이터센터 가산, 케이스퀘어 강남2, 안양 물류센터, 인천 주안 e편한세상 에듀서밋 등 다양한 자산군에서 개발과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를 중심으로 개발과 운영을 병행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 왔다"며 "개발과 설계 단계부터 쇼핑·커뮤니티·여가 등 지역민의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반영해 각 지역의 대표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분양형이지만 운영형으로, 과도기 사례도
엠디엠과 네오밸류는 전통적인 분양형 디벨로퍼에서 출발해 운영형 모델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엠디엠은 해운대 리조트, 동탄 헬스케어 리츠 등에서 호텔·실버타운·의료시설을 직접 임대·운영하며 개발 이후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고, 네오밸류 역시 상업시설을 외부에 분양하지 않고 직접 보유·운영하는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모델을 실험해 왔다. 분양에 의존하던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자산을 일정 부분 남기고 운영 수익을 축적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들 사례는 디벨로퍼 산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평가된다.
다만 PF 위기와 고금리 환경이 겹치면서 이러한 전환은 현실적으로 일부 자본력이 있는 시행사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영형 모델은 자산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임대수익을 축적해야 하는 구조인 반면, 기존 PF 사업은 차입금 상환을 위해 일정 시점 내 분양을 통해 현금을 회수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버티며 운영해야 하는 사업과 빠르게 회수해야 하는 금융 구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다. 실제로 네오밸류처럼 운영형 모델을 적극 도입한 사례조차, 금리 상승과 PF 경색 국면에서 높은 레버리지 부담이 드러나며 재무 리스크에 직면한 바 있다.
결국 순수 분양형 시행사가 단기간에 운영형 모델까지 안착한 사례가 드문 것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에 가깝다. 리츠를 활용해 자산을 장기 보유·운용하려면 자산관리회사(AMC) 인가, 지분 분산 규제, 공시·내부통제 등 금융회사 수준의 제도적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버틸 수 있는 자기자본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시행사는 저자본·고레버리지 구조에서 분양을 통한 단기 회수를 전제로 사업을 설계해 왔기 때문에, 자산을 오래 들고 가는 구조로 전환할수록 오히려 재무 부담이 커지는 역설에 직면한다. 때문에 디벨로퍼 산업의 '운영형 전환'은 방향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실제 확산 속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전통 시행사가 직접 리츠를 설립하고 운용까지 맡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리츠는 지분 규제와 인가·공시 의무 등 금융회사 수준의 요건을 갖춰야 하는 데다, 장기 보유를 감내할 자본과 운영 역량까지 필요해 대부분 시행사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고 답변했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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