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러시아 시민들에게 두 개의 한국은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이웃 국가입니다. 특히 40~50대 이상의 중장년층과 60대 이상 노년층에게 한반도의 두 '코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년 동안 어떻게 서로 다르게 변화해 왔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약 10년 전, 한 북한 전문 교수로부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대학 북한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10년 뒤 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전원이 부정적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이어 "그렇다면 20년 뒤는 어떻겠느냐"는 질문에도 여전히 다수의 학생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앞으로 50년 뒤에도 한반도가 지금처럼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적대하며 차량 통행도 없고, 배나 비행기도 오가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시간의 범위를 50년으로 넓히자, 상당수의 학생들은 정치적 통일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남북 상태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큰 변화는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했다고 합니다.
2018년 5월2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가 이 이야기를 들은 지 불과 1년 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이어 같은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두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러 3자 협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러 양국 협력의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9개의 다리(나인 브릿지)' 전략이었습니다.
나인 브릿지 전략은 한국과 러시아가 에너지·물류·산업 전반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제시한 중장기 경제협력 구상입니다. 가스, 철도, 항만, 전력망,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 산업단지 등 9개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간 연결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단순 교역 확대를 넘어 인프라와 산업을 직접 연결하는 '연결형 협력'에 방점을 둔 전략으로, 남·북·러 협력까지 염두에 둔 점이 특징입니다.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이곳을 방문하며 역사적 전환의 가능성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모두가 알고 있듯, 그 황금 같은 변화의 기회는 불행히도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불과 1년 뒤조차 감히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극동 러시아 시민의 입장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제 정치와 외교를 평범한 시민인 우리가 좌우할 수는 없지만,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극동 러시아 시민들이 한국과의 협력, 더 나아가 한반도 양측과의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9년 4월25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나인 브릿지 전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정책이 아닙니다. 지난 30년 동안 양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 개척해 나간 모든 사업과 협력의 결과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발표한 매우 정교한 국가 전략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9개의 다리가 완성되지 못한 채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혼란한 글로벌 상황은 우리가 초심으로 돌아가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제 상시적인 위기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에너지, 기후변화, 식량 부족, 물류 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일방적인 억압이나 제재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저는 희미해져 가고 있는 한·러 협력의 길을 어떻게 다시 선명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사실 그 해답은 이미 수년 전 한국 정부가 제시한 '9개의 다리' 속에 담겨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제재 환경 속에서 이러한 정책을 한 번에 모두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다음 글에서는 각 나인 브릿지 분야별로 지금 당장 함께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협력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 나름의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0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학생들은 이제 30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10년이 지나면 그들은 40대 장년층이 되어 사회의 중추 세력이 될 것입니다. 그때의 학생들이 다시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극동 러시아와 한반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유리 시바첸코 루스퍼시픽그룹 컴퍼니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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