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시작하긴 쉽고 끝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바로 그렇죠.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에 첨단 자산을 투입한 단기 군사작전을 통해, 전쟁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 듯합니다. 특히 이란 지도부 '참수 작전'이 성공하면 상대국 전쟁 수행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 같습니다.
전쟁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란은 훨씬 강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중동 전체가 긴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악화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에게 호르무즈 해협 호위 작전에 참여해 달라며 군함 파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란 미나브 소재 여학교에서 발생한 이스라엘-미국 공습(이란 당국 주장)으로 희생된 피해자들, 대부분 어린이들을 위한 무덤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AP)
이번 사태를 보면 전쟁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군사적 사건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아울러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 인식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합니다. 안보 위협에 대응하려면 외교정책과 군사능력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합리적인 여론 형성 능력이 중요합니다. 후자를 담론과 공론장의 영역이라고 부르죠. 우리 사회는 안보 공론장이 취약한 편입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담론은 더욱 약했죠. 이번 중동 전쟁에서도 같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제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전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고 대화와 외교를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전쟁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입니다. 고전 전략서 『손자병법』은 전쟁을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쟁은 막대한 비용과 부담을 낳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도 명확한 목적 아래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대 군사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은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상대에게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은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수단이 긴밀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 핵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에 상대국 지도부를 선제 타격했습니다. 전쟁 목적이 무엇인가, 수단과 절차는 적합한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발언과 유력한 언론 매체 논조를 보면 논쟁 지점이 명확합니다.
한·미 동맹의 현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드러내놓고 이런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사회나 전문가 집단, 주요 언론마저 이런 주제에 무관심했습니다. 답답한 노릇이죠. 한국 국격에도 맞지 않아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동 전쟁 개전 엿새 뒤인 3월5일 어떤 연구소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기회에 "국제사회는 무력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외교·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급히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나마 다행스럽게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그가 일찌감치 발신해 주었습니다.
퇴임 후 첫 미국 방문에 나선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인천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둘째, 첨단 군사기술의 효율성 중심으로 전쟁 담론이 치우치고 있습니다. 최근 전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과 정밀 타격 기술, 첨단무기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논평을 많은 전문가가 쏟아내고 있습니다. 첨단기술은 중요합니다. 우리도 낡은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전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군사적 효과와 정치적 결과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번에 지도부를 정밀 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계속 저항하고 있습니다. 군사기술의 효율성만으로 전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식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셋째, 전쟁을 산업적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을 절제해야 합니다. 많은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요즘 'K-방산 대박'이라고 자주 표현합니다. 한국 방위산업의 경쟁력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전쟁의 참화를 세계인이 목격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돈 벌 기회로 바라보는 나라를 외국에서 어떻게 볼까요? 한국 국가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국가라기보다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해야 합니다. 방위산업에 대한 흥분된 논평을 절제하고 차분한 메시지로 접근해야 산업 경쟁력이 강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강 능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최근 일부 미군 자산이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미국이 필요해서 하는 행동을 말리긴 어렵습니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이럴 때일수록 한국은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전시작전권 회복도 필요하죠.
국제 안보 질서가 흔들릴수록 우리는 차분하고 전략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을 말로 쉽게 소비하는 사람들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죠. 전쟁을 치밀하고 신중하게 다룰 때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