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지역입니다. 그중에서도 타지키스탄은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죠. 그러나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산악지대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품은 이 나라는 젊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 그리고 한류에 대한 호감까지 더해져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 기업들엔 미지의 시장이지만 그만큼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무대이기도 합니다. 베일에 싸인 타지키스탄의 진짜 얼굴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타지키스탄인으로서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인들의 놀라운 열정과 세계적인 기술력을 매일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레즈(Sarez) 호수'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아직은 낯선 우리 고향의 신비로운 보물을 제대로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호수가 한국과 타지키스탄 양국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황금 자산'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습니다.
115년의 공포, 중앙아시아를 위협하는 '시한폭탄'
중앙아시아의 지붕이라 불리는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 해발 32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는 사레즈 호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호수는 1911년 2월 대지진으로 발생한 거대한 산사태가 우소이 마을을 집어삼키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연 댐을 형성하면서 탄생했습니다. 1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레즈 호수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잠자는 미녀’로 불려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류 지역을 위협하는 위험성 때문에 ‘잠자는 용’이라는 무서운 별명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파미르 고원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레즈 호수. (사진=타지키스탄 관광청)
사레즈 호수는 길이 약 70킬로미터, 깊이 약 500미터에 달하며 수량은 무려 17세제곱킬로미터, 약 17조리터에 이릅니다. 이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청정수가 거대한 규모로 저장된 양입니다. 자연 제방인 우소이 댐이 붕괴되어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타지키스탄을 넘어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심지어 이란의 일부 지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무다리야 강변의 마을과 농경지들은 오랫동안 이 '잠자는 용'의 위험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반전, '골드 자산'으로의 재평가
그러나 전 세계가 물 부족과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지금, 사레즈 호수는 새로운 의미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블루 골드' 자산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레즈의 물은 불순물이 거의 없는 매우 깨끗하고 부드러운 수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거대한 담수 자원은 타지키스탄과 인접 국가 약 3000만명의 식수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낙차를 활용한 수력발전은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에너지인 청정 전력과 그린수소 생산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안정적으로 관리된 용수 공급이 가능해진다면 가뭄 시기 아무다리야강 하류 지역의 수백만 헥타르(㏊) 농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레즈 호수는 단순한 자연 호수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물·에너지·식량 안보를 동시에 좌우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입니다.
왜 한국인가? 기술과 자원의 '전략적 스왑'
그렇다면 왜 한국일까요. 현재 타지키스탄 정부는 위성 모니터링과 현장 조사를 통해 호수를 관리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첨단기술과 대규모 인프라 역량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이러한 조건을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국가입니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보유한 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 기반 조기 경보 시스템은 사레즈 호수의 변화를 정밀하게 감지하고 위험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고도화된 건설 기술로 수위 조절용 터널을 구축해 수위를 약 20~40미터 낮춘다면 댐 붕괴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막대한 수력발전 잠재력을 활용해 새로운 에너지산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사레즈의 청정수를 '파미르의 심장(Sarez–Heart of Pamir)'이라는 브랜드로 개발해 한국의 유통과 마케팅 역량을 결합한다면 세계 프리미엄 생수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이 물관리 기술과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대가로 파미르 고원에 풍부하게 매장된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개발에 대한 협력 우선권을 확보하는 전략적 협력 모델도 가능합니다.
최근 사레즈 호수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르더라도 압도적인 자연의 경관에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이 호수의 가치는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중앙아시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이 호수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경제적 가치와 상생의 기회를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타지키스탄의 자연 자원과 한국의 혁신 기술이 결합한다면 사레즈 호수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인 잠자는 용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양국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이 잠자는 용을 인류를 위한 '블루 골드'로 깨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파미르 산맥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사레즈 호수 위성사진. (사진=타지키스탄 관광청)
보보예프 루스탐존 타지키스탄 오리욘은행 한국지사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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