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질서를 공유하지 않는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2026 뮌헨안보회의'가 주는 시사점
2026-02-24 06:00:00 2026-02-24 06:00:00
지난해 2월(14~26일) 뮌헨안보회의(MSC)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의 연설로 난리였다. "퇴보 중인 유럽은 행로를 바꿔야 한다"고 직격하면서, 유럽을 '그들(them)'이라고 했다. 1963년 출범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 서방을 넘어 세계 최대 규모 포럼이 된 MSC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미국 백악관은 1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유럽의 '문명 쇠퇴'를 거론하는가 하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압박했다. 나중에 물러서기는 했지만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고까지 했다. 유럽에서 2차 대전 후 세계 질서의 기본 축인 '대서양 동맹'이 붕괴됐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열린 올해 MSC에 미국에서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나섰다. 그는 "유럽은 미국의 소중한 동맹이자 오랜 친구이며, 미국은 언제나 유럽의 자식일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유럽을 안심시키려 했다. 지난해 밴스와 달리 유럽과 미국을 아울러 '우리(u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장지가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서구의 관리된 쇠퇴를 예의 바르고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올해 회의 개막에 앞서 그 운영진이 발표한 '뮌헨 안보보고서 2026(Munich Security Report 2026)'는 현 국제 정세에 대한 유럽의 인식이 그대로 담겨있다.

2026년 뮌헨안보회의 연례보고서 표지. (사진=뮌헨안보회의 홈페이지) 
 
"미국 대통령이 가장 두드러진 국제질서 파괴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박사는 123쪽 분량의 이 보고서를 소개·분석한 지난 20일자 '뮌헨 안보회의 2026의 주요 내용과 함의 및 시사점' 이슈 브리프에서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세계가 더 이상 하나의 질서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라고 진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45년 이후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데 그 어느 나라보다 큰 역할을 했던 미국의 대통령이 이제는 가장 두드러진 파괴자가 되었다. 그 결과 80년이 지난 지금 전후 국제질서가 실제로 해체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보고서는 세계가 더 이상 점진적 개혁의 단계에 있는 게 아니라 기존 제도와 규범, 동맹 체계를 과감히 흔들고 재편하려는 이른바 '파괴적 정치(wrecking-ball politics)'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렇게 만든 주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현재의 국제정세를 인식하는 7개의 핵심 개념을 제시하면서, 그 첫 번째로 '질서의 파편화(fragmentation)'를 꼽았다. 국제사회가 더 이상 단일한 규범 체계에 의해 운영되지 않으며, 지역·진영·이슈별로 상이한 규칙과 네트워크가 중첩되는 다층적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안보 개념의 확장'이다. 군사력 중심의 전통적 안보를 넘어 공급망, 에너지, 식량, 사이버 공간, 인공지능, 기후가 모두 안보의 영역으로 편입됐다는 인식이다.
 
셋째는 '글로벌 사우스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다. 다수의 비서구 국가들이 미·중 경쟁에서 일방적 편승을 거부하고, 사안별 선택과 실용적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국제질서가 이념 블록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유동적 네트워크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넷째는 '대서양 동맹'은 여전히 유럽 안보의 핵심축이지만, 미국의 역할과 의지가 언제나 자동적으로 보장된다는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제 유럽은 미국 의존을 전제로 한 기존 안보 모델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방위 역량과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다섯째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 안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규정했다.
 
여섯째는 '기술 발전'은 양날의 검이라는 인식이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사이버 공격과 정보 조작, 여론 분열을 증폭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곱째는 '정치·사회적 신뢰의 침식'이다. 민주적 제도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뢰 하락이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고 점진적 개혁보다 급진적 변화와 구조적 파괴를 선호하는 정치적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극우 득세에 따른 국내 정치의 극단화가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병광 박사는 지난해 보고서가 국제질서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이를 '관리 가능한 위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국제질서의 위기를 질적 전환으로 규정한 올해 보고서는 더 이상 기존 질서를 손질하거나 개선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를 의도적으로 흔들고 해체하려는 정치가 확산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짚었다. 때문에 문제의식이 "질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서 "질서가 무너지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대응할 것인가"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올해 NSC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의 행보는 특히 주목받았다. 중국은 다자주의와 유엔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대국 역시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정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하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사진=뮌헨안보회의 홈페이지)
 
"동맹이 자동 안전장치 아니야…전략적 자율성 병행해야"
 
박병광 박사는 "'MSC 2026'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며 "동맹은 여전히 핵심 자산이지만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안전장치는 아니며, 전략적 자율성과 다층적 대응 역량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오산 기지에서 발진한 주한미군 전투기들이 한국군에는 사전에 구체적인 비행 목적과 계획을 알리지 않은 채 서해상 훈련을 나섰다가 중국 전투기들과 대치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 18일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산 기지에서 발진한 주한미군 전투기들이 서해상 훈련 중에 중국 전투기들과 대치하면서 한때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 18일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한미군 측은 훈련에 앞서 우리 군에 훈련 사실은 통보했으나 구체적인 비행 목적이나 계획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안규백 국방부 장관 등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항의했다. '핵심 자산'인 동맹의 독자적 군사행동 때문에 자칫 우리 의사와는 관계없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휘말려 들어갈 뻔했던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