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군대=민주주의 지킴이', 국방 이론을 정립하자
'국민의 군대'는 왕의 군대, 군부독재 군대, 당의 군대와 다른 꼴
근대 민주주의 시민혁명과 독립전쟁 배경으로 탄생, 발전
친일과 군사정권 흔적 탓에 우리는 '국방+민주'가 생소
대통령과 국방장관 발언 취지 살려 연구와 교육 강화해야
2026-02-24 06:00:00 2026-02-24 06:00:00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참다운 국민의 군대가 될 때 우리 군은 더욱 압도적인 힘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죠.
 
1863년 남북전쟁 중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민주주의 핵심 원칙을 정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대통령의 '국민의 군대'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지키는 게 군대의 의무라는 이야기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 차량에 탑승해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동서양 군대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 지킴이=국민의 군대'라는 명제는 근대 시민혁명과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합니다. 영국 식민 지배를 받던 지금의 미국인들은 18세기에 독립전쟁을 일으키는데요. 그때 영국군에 맞서기 위해 민병대로 대륙군(Continental Army)을 조직합니다. 그 지휘관이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이죠.
 
독립전쟁에서 영국을 격퇴한 조지 워싱턴 장군은 1783년 12월23일 대륙의회 회의에서 군 지휘권을 왕이나 다른 장군에게가 아니라 국민 대표인 대륙의회 의원들에게 반납합니다. 나아가 군대 해산까지 요청했습니다. 국민의 군대를 조직해 지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다음에, 그 치명적인 무력을 다시 국민의 통제로 되돌렸죠.
 
미국에는 국군의 날이 따로 없습니다. 1775년 6월14일 제2차 대륙회의에서 영국군에 맞서 대륙군을 결성한 것을 기념하고자 6월14일을 미 육군 창설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미 해병대 기원도 흥미로운데요. 1775년 11월10일 미국 필라델피아 턴 태번(Tun Tavern)이라는 선술집에 젊은이들이 모여, 정박 중인 영국 해군 함정을 습격할 결사대를 조직했던 날짜를 미 해병대는 창설 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을 통해 세계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이 탄생했죠. 미국 독립전쟁이 시민혁명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 군대가 탄생했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며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웠는데요. 이때 국민이 세운 정부를 지키려고 자발적으로 모인 민병대가 현대 프랑스 군대의 기원입니다. 프랑스군은 바스티유 데이라고 해서 그날을 창설 기념일로 삼고 있죠.
 
우리 역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한 조처에 맞서 대한제국 군인들이 봉기해 일본군과 싸웠고, 이들 상당수가 항일 의병으로 전환했죠. 이어 1920년대 독립군과 1940년대 광복군으로 독립전쟁을 뜨겁게 벌였는데요. 왕정 복고가 아니라 민주공화정을 세우기로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력인 독립군과 광복군이 바로 국민의 군대 출발점이었죠.
 
독립군 장교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던 인물이 쓴『원병상 회고록』(2023)이 있는데요. 이 책을 보면 1911년~1920년 사이 가동했던 신흥무관학교에 양반, 상민 계급 구분 없이 다양한 인물이 몰려들었고, 학교가 민주적 기풍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의 군대는 충성 대상이 국민이며 조직 운영 원리, 가치 체계와 군대 문화가 민주적입니다. 국민의 군대는 곧 민주주의 군대라고 해도 됩니다. 왕의 군대, 군부독재나 군국주의 군대, 공산당 체제 당의 군대와 모든 면에서 다르죠.
 
국방부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원회가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센터에서 '국방관련 헌법가치 정착 방안'을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 민간 위원 및 시민사회 활동가 약 15여명과 국방부·각 군 법무·인권·정신전력 관계관들이 참석해 군인복무기본법, 문민 통제, 헌법 교육 분야에서 헌법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그동안 한국에서 국민의 군대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않았고, 군대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노력도 부족했던 점입니다. 1948년 정부 수립 뒤 일본군, 만주군 출신자들이 한국군 상층부를 오래 차지하던 시절에, 독립전쟁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지 않았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때는 반공과 안보 위주로 군대의 사명을 거론했습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가 군대에도 높은 개념으로 중요한데, 그런 말을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흔적이 일부 남은 듯한데요. 군에서 실시하는 정신전력 교육 가운데 역사 분야를 보면, 고구려인의 상무 정신을 높이 치켜세운다든가 고려와 조선 때 국난을 극복한 호국 영웅의 활동을 기리는 내용이 많습니다. 영웅의 공적을 기리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요. 그러나 전쟁을 다룰 때 국제관계, 외교, 민생 등 여러 요소를 젖혀놓고 영웅의 역할만 강조한다면 올바른 역사 공부라고 하기 어렵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의 '국난 극복 영웅 사관'이 크게 수정되지 않고 지금도 통용되는 것 아닌가 궁금증이 생깁니다.
 
12·3 불법 계엄 때 고급 장교들이 계엄 동원에 변변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휩쓸려 들었습니다. 군대 간부 문화나 정신전력 교육에 취약점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배경이 앞에서 소개한 한국 현대 국방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 대통령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국민의 군대' 재건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방 현실에서는 관련된 연구와 논의가 부족한 까닭에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 군대가 불법 계엄 상처를 씻고 강한 군대로 거듭나려면 꼭 필요한 과제입니다.
 
지난해 12월까지 국방부가 운영했던 '내란 극복 및 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헌법가치 정착 분과에서는 군 내부에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가 뿌리내리도록 체계적인 국방 이론 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군인과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이 이런 주제를 활발히 연구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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