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다시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국회 심사를 앞둔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이 있습니다. 대미 투자 이행 압박을 넘어, 한국 입법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입니다. 쿠팡에서 촉발된 플랫폼 규제가 '통상 보복 변수'로 편입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관세 엄포에 사전 경고까지…표적은 쿠팡발 '온플법'
27일 정부에 따르면, 제임스 헬러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지난 13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제1수신자로 지정해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원상 복귀" 발언에 앞선, 사전 경고 성격의 조치였습니다.
정부는 "해당 서한이 한국의 디지털 분야 현안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 이행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외교부·산업부가 아닌 과기정통부를 제1수신자로 정한 것은 미국이 이번 갈등을 자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규제 문제로 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미국은 오는 3월 국회 심사를 앞둔 온플법과 이미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차별적이라고 문제 삼아왔습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불법·허위 정보 삭제 의무를, 온플법은 불공정 행위 규제를 각각 담고 있습니다.
두 법 모두 국내 사회문제 대응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미국은 이를 자국 플랫폼 기업까지 포괄하는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의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세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표면적으로 딥페이크 문제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이 법에 반발하는 이유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모델로 삼아, 메타와 구글 등 자국 기업의 사업 활동에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여당은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해 이들에 대한 강한 규제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기업을 사례로 들며 미국을 겨냥한 규제라고 반발했고,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을 거치면서 현재 논의 중인 법안에서 독과점 규제 조항은 제외된 상태입니다.
온플법은 미국의 관세 협상 압박 속에 한때 추진 동력을 잃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쿠팡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보보안 문제를 넘어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과 통제 공백에 대한 우려가 부각됐고, 재추진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최근에도 온플법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미 하원 세출위원회는 이달 초 '2026회계연도 세출법안 보고서'에서 "한국 온플법이 미국 기술기업을 표적 삼아 중국 경쟁사를 유리하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세출위는 미 무역대표부(USTR)에도 대응 방안을 보고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디지털 규제 입법을 통상·외교 현안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가 의회 차원에서도 공식화된 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호관세 판결에 중간선거 앞…자국 정치 활용 '노림수'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엄포는 다목적 포석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한·미 정상 간 발표된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자료)에는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한국 국회가 한·미 간 합의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정치 일정도 겹쳐 있습니다. 미연방 대법원이 상호관세에 위법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짙은 국면에서,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기업 보호'와 '관세 압박'을 동시에 내세울 정치적 동기가 분명합니다. 외교 현안을 국내 정치 메시지로 전환하는 트럼프식 전략이 다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한국 입법과 법 집행을 무역법 301조 조사와 관세 조치로 직접 연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미국 기업에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 개시만으로도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입니다.
실제 보복 조치에 이르지 않더라도, 조사 자체는 상대국 정책 결정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동해왔습니다. 쿠팡 사안을 계기로 한 USTR 조사도 현실화 단계입니다. 청원 주체가 '미국 투자자'로 자본의 재산권 침해를 전면 내세웠다는 점에서 USTR은 이를 민간 분쟁으로 치부해 각하하기 어렵습니다.
세종=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