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파리나 모기와 함께 흔히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지만,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는 가장 성공한 생물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여기서 성공은 개체수와 분포 범위, 장기적 생존력, 그리고 환경 변화에 대한 회복력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개미는 열대우림에서 사막과 고산지대, 도시의 콘크리트 틈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육상 환경에 서식합니다.
홍콩대 파트릭 슐타이스(Patrick Schultheiss) 교수 연구팀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개미의 수는 약 20경 마리에 달합니다. 이를 현재 세계 인구 약 80억 명과 비교하면, 사람 한 명당 약 250만 마리의 개미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개미는 초유기체적 진화 시스템과 고도로 발달한 분업 구조를 통해 인류세(Anthropocene)의 생태환경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해 온 생물군 가운데 하나다.(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생물체에 포함된 수분을 제외하고 탄소 질량만으로 환산한 건조탄소기준 바이오매스(dry carbon biomass)로 보면, 인간 한 명의 평균값은 약 7.5kg이며 인류 전체의 바이오매스는 약 60메가톤에 이릅니다. 반면 전 세계 개미의 바이오매스는 약 12메가톤으로, 야생 조류와 포유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고 인류 전체 바이오매스의 약 5분의 1에 해당합니다. 개미의 종수 역시 약 1만 5천 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개미는 어떻게 이처럼 천문학적 개체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빠른 종 분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 ‘더 값싼 노동자들의 진화는 더 큰 사회를 가능하게 하고 개미의 다양화를 가속화했다(The evolution of cheaper workers facilitated larger societies and accelerated diversification in ants)’는 이 질문에 대해 주목할 만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이 연구는 개미 사회의 성공이 더 강한 개체의 출현이 아니라, 일개미 한 마리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차 낮아지는 방향으로 이뤄진 집단적 진화의 결과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변화가 거대한 군체의 형성과 개미 종의 폭발적 다양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개미 사회 기본 단위: ‘군체’
개미 사회에서 진정한 진화 단위는 개별 개미가 아니라, 여왕·일개미·병정개미로 이뤄진 하나의 군체입니다. 개미와 같이 여러 개체가 모여 하나의 ‘개체’처럼 기능하도록 진화한 집합체를 생물학자들은 흔히 ‘초유기체(superorganism)’라고 부릅니다. 이 초유기체에서 일개미는 생식 능력을 포기한 대신, 먹이를 구하고, 둥지를 짓고, 유충을 돌보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합니다. 다시 말해 일개미는 군체의 생존을 위한 노동자 같은 요소입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일개미 한 마리를 만들고 키우는 데는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먹이가 제한된 환경에서는 많은 일개미를 유지하는 것이 곧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개미는 이런 위험을 어떻게 회피할까요?
연구진은 이 논문에서 일개미를 ‘더 값싼 노동자(cheaper worker)’라고 표현합니다. 연구진은 다양한 개미 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진화적으로 성공한 개미 집단일수록 일개미의 평균 체구가 작고, 발달 과정이 단순하며, 개체당 에너지 투자량이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해, 개미 사회는 점점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몸집이 작아지면 한 개체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개체를 생산할 수 있고, 일부 개체가 죽더라도 사회 전체에는 큰 타격이 없습니다. 이는 군체 차원에서 보면 위험 분산 전략입니다.
홍콩대 파트릭 슐타이스 교수가 논문에 발표한 개미의 서식분포도. 숫자는 평방미터당 개체수를 나타낸다.(사진=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
값싼 노동자가 만든 ‘규모의 경제’
이러한 전략으로 일개미 한 마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줄어들면서, 군체는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도 더 많은 일개미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미의 큐티클, 즉 외골격(exoskeleton)은 키틴을 주성분으로, 단백질과 지질이 결합된 다층 구조의 복합재료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외골격은 곰팡이 감염이나 물리적 충격 등 다양한 외부 요인으로부터 개미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큐티클이 두꺼울수록 방어 기능은 강화되지만, 그에 따라 개체 하나를 형성하는 데 요구되는 물질적·에너지적 비용도 늘어납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교(OIST)의 에반 이코노모(Evan Economo) 교수는 “큐티클의 크기와 두께가 커질수록 일개미 한 마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연구진은 507종, 880마리의 개미표본을 대상으로 3차원 X선 미세단층촬영(micro-computed tomography)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큐티클이 상대적으로 얇은 개미 집단은 더 많은 개체수를 포함하는 군체를 이루는 경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종 분화를 통해 다양한 환경 조건에 적응할 가능성도 더 큰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이 결과는 외골격에 대한 투자 수준이 개미 사회의 규모와 진화적 다양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번 연구는 헤겔이나 엥겔스가 제시한 ‘양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낳는다’는 사회 발전의 변증법적 원리가, 개미 군체의 진화 과정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연구진은 군체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적 복잡성이 증가하고, 이런 변화가 장기적으로 개미 집단의 분화와 다양화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생물 종의 다양화는 환경 변화나 지리적 격리와 같은 외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적어도 개미 집단에 한해서는, 사회 구조 그 자체가 진화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군체가 대형화될수록 일개미가 하는 작업은 더 분업화됩니다. 일부 일개미는 씨앗을 수집하고, 다른 개체는 진딧물을 돌보며, 또 다른 개체는 포식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세분화된 활동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종 수준의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개미를 낮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계통의 개미는 그렇지 않은 계통에 비해 새로운 종을 더 빠른 속도로 만들어냈습니다. 사회 규모의 확장이 곧 진화 과정의 속도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입니다.
개미 진화의 불편한 진실
이 연구에 등장하는 ‘값싼 노동자’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를 연상시킵니다. 낮은 비용의 노동력이 확대되면서 사회의 규모와 생산성이 커지는 현상은 인간 사회에서도 반복되어 온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개미 사회에서는 이런 변화가 개별 개체의 고통이나 불평등 문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일개미는 군체 전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외골격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이는 생태계의 진화가 항상 ‘더 강하고 더 고급인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진화는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될 수 있고, 구조적으로 단순하며, 서로 대체 가능한 개체들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개미 사회의 성공 역시 개별 개체의 강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군체의 확장을 가능케 한 생산 방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스템이 개미를 오늘날 지구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집단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