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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2화)열반·깨달음·선(禪)에 집착 말라
2023-06-05 06:00:00 2023-06-05 06:00:00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금강삼매경》의 핵심 사상 세 가지 중에서 두 번째인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이란열반에도 머물지 말아라!” “상주열반(常住涅槃) 시열반박(是涅槃縛)”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늘 열반에 머물러있고자 한다면, 그것은열반박(涅槃縛)’이다.
 
‘박()’이라는 것은 속박, 묶이는 것을()’이라고 얘기합니다. “열반에 머물러야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으면, 열반에 구속 당하는 것이고, “열반에 집착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에 불교는 열반을 추구하는 가르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강삼매경》은 열반이 그렇게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열반에만 머물고자 한다면, 그것은 열반박(涅槃縛)이다! 열반에 대한 집착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삼매경》은 열반에만 머물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나 깨달음[취증(取證)]에도 집착하지 말아야[부주취증(不住取證)] 한다고 말합니다. 《금강삼매경》의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한 열반 또한 깨달아 얻음에 머물지 말아야 하니[부주취증(不住取證)], 결정된 곳에 들어가 모습도 없고 행함도 없을 것이다.[“寂靜之涅槃, 亦不住取證, 入于決定處, 無相無有行。” (《金剛三昧經》, <無相法品>, 209.] “맑고 깨끗하여 머무름이 없어서, 삼매에도 들어가지 않으며[불입삼매(不入三昧)], 좌선에도 머물지 아니하니[부주좌선(不住坐禪)], 생겨남도 없고 행함도 없다.[“淸淨無住, 不入三昧, 不住坐禪, 無生無行。” (《金剛三昧經》, <無生行品>, 247.]
 
삼매나 좌선이나 깨달음, 열반 등 불교에서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고 상식적으로 알려진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금강삼매경》은 말하고 있다. 무언가에 집착함이 있다면 깨달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효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머무름이 없음을 밝혀서 이로써 머무를 곳이 있다고 붙잡으려는 마음을 버리고[견유주지착(遣有住之著)], 나중에 얻음이 없음을 보여서 이로써 얻을 바가 있다고 매달리려는 마음을 제거한다[제유득지집(除有得之執)]. (…) 늘 머무는 지혜는 일체 모든 속박에서 풀려 벗어난다.”[先明無住, 以遣有住之著; 後示無得, 以除有得之執。 (…) 常住之智, 解脫一切縛。(元曉, 《金剛三昧經論》, <本覺利品>, 293.)]
 
원효는 머무를 곳이 있다고 붙잡으려는 마음[()]도 버리고, 얻을 바가 있다고 매달리려는 마음[()]도 제거하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열반, 깨달음, 삼매, 좌선 등 일체의 모든 것이 다 포함되며, 이런 일체 모든 가치에 대한 묶임에서 풀려나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금강삼매경》은 이처럼 열반에만 머물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좌선(坐禪)에도 머물지 말아라, 삼매(三昧)에도 머물지 말아라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금강삼매경》은 승복과 계율과 승단(僧團, 승려들의 단체)에도 의지하지 말아라 라고 말합니다.《금강삼매경》이 이런 계율과 승복과 승단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내세워서 자기를 과시하거나, 가오를 잡으려고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라 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필사본. 대영박물관 소장. 사진=필자 제공
 
이는 내가 세상을 버리고 출가해 도를 닦고 있는 승려라는 아상(我相)이나, 어떤 승단 조직에 속해 있다는 집단적 아상(我相), 내가 이런 훌륭한 계율을 지키고 있다는 아상(我相) 따위를 모두 내다버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승단이나 법복 따위의 외양적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작은 성취를 돌아보지 말고 오로지 우주의 이치를 바로 보겠다는 구도의 열정만을 가지고 세상에 나서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건 조계종 종단이 가장 두려워할 구절일지도 모릅니다. 중세 유럽에서도 예수의 재림을 교황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어법이 있었습니다. 《금강삼매경》과 같이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깨달음과 보살행의 실천에 가장 철두철미한 경전은 오늘날 기득권을 잔뜩 지닌 승단에서 가장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승단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현실 정치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암투를 벌이고, 승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승려와 재가 신도들이 앉는 방석의 색깔부터 차별을 하며, 어떻게든 기존의 권위에 기대어서 대우를 받으려는 모든 기득권 납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깜짝 놀랄 발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납자 가운데 승복 벗어던지고 승단의 아무런 뒷배경 없이 어떤 후광 효과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깨친 우주의 참된 섭리만을 설파해서 이 땅의 대중들로부터 지지와 동의를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깨우친 선지식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원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병을 덮어놓으면 물이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비유를 들자면 그릇을 엎어놓으면 비록 비가 내리더라도 끝내 비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지요. 비유를 들자면 그릇에 구멍이 나 있으면, 비록 엄청난 비를 받더라도 끝내 담아둘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譬如覆水不得入。(…) 譬如覆器, 雖降雨, 而終不能受。譬如孔器, 雖受千雨, 而終不住。(元曉, 《無量壽經宗要》)]
 
원효의 말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가 중요하지, 승단이니 법복이니 하는 외부적 조건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원효 덕분에 우리는 황금빛 법복이나 금빛 장식된 어떤 권위 있는 승단보다도,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이 훨씬 더 고귀하며 숭고함을 깨닫게 되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고 말한 선승 임제의 선어록을 담은《벽암록》. 사진=필자 제공
 
나아가서 《금강삼매경》은머물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조차 내지 말아라라고 얘기합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원효 스님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쌍민(雙泯, 두 겹으로 지움)’이다. 라는 말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쌍으로()’은 지운다는 뜻입니다. 머물지 않겠다는 마음조차 지운다 라는 뜻입니다. 머물지 않아야 되는데, 머물지 않겠다는 마음조차도 지운다. 머물지 않겠다는 마음조차도 인위적으로 내지 않는다. 라는 뜻이죠.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열반(涅槃), 좌선(坐禪), 참선(參禪) 깨달음, 승복, 승단, 계율 이런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된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에서 얘기하고 있는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은 선종에서 나왔던어떠한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고 깨뜨려야 된다는. 그런 사상들과 일맥상통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후대에 선승들이 얘기했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봉불살불(逢佛殺佛) 하고, 봉조살조(逢祖殺祖) 하라!“ 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는 근본적인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은 이처럼 내용면에서 후대의 선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티베트어로도 번역되어서 티베트 불교의 사대 종파 중의 하나인 닝마파의 소의경전(所依經典, 교의 등의 근거로 삼는 경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금강삼매경》의 두 번째 핵심사상인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어서 《금강삼매경》의 핵심 내용인능소평등사상과계인연(戒因緣) 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강삼매경》을 소의경전으로 채댁한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인 닝마파의 탕카(불화). 사진=필자 제공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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