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술의 전당과 과학의 전당
입력 : 2021-10-25 06:00:00 수정 : 2021-10-25 06:00:00
예술의 전당, 1988년 전두환이 야심차게 기획한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 마땅한 문화공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강남에 세워진 건물이자 특수법인이며, 국립현대미술관, 독립기념관과 함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정권의 이미지를 문화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추진했던 초대형 국가프로젝트였다. 예술의 전당은 문화예술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 향수 기회 확대를 위한 각종 사업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으며,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상주하는 국내 문화예술의 본진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시설 운영비의 겨우 20%만 국고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예술의 전당은 공공성을 잃고 상업시설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예술의 전당은 예술의 범위를 제한하는 걸로 유명하다. 2000년대 들어 조용필, 조관우, 이용 등의 대중가수가 콘서트를 열긴 했지만 아직도 메인홀인 콘서트홀에서 대중가수가 공연을 한 적은 없다. 강남스타일로 글로벌 스타가 된 싸이는 예술의 전당의 이런 대중가요 차별을 지적했고, 가수 인순이는 예술의 전당 대관의 문턱을 여전히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중가요와 클래식을 위한 공연장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이나 발레처럼 서양에서 고급교양으로 알려진 예술 분야만을 다루기 위한 공간일 수 있다. 문제는 예술의 전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이 공간이, 과연 한국 예술계의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견이지만, 강남 한복판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대중과 예술의 거리를 오히려 벌리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의 전당이 보여주는 위용이 부러웠나 보다. 이상희 전 과기부 장관은 줄기차게 과학의 전당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엔 무려 136개의 과학관이 있고, 이 중 국공립 과학관이 96개에 이르는데, 이상희 전 장관이 제안하는 과학의 전당은 과학관과는 뭔가 다른 기획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강남스타일, 방탄소년단, 기생충 등의 한국문화가 전세계를 휩쓴 이유는 예술의 전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에겐 끼가 강한 편이고, 끼에는 감성적인 기와 이성적인 끼가 있는데 감성적 끼는 문화예술이고 이성적 끼는 과학연구개발이란다. 그래서 예술의 전당은 감성적 끼를 살려 세계적인 한류 문화의 확산을 만들었는데, 이성적 끼를 살릴 과학의 전당이 없어, 과학계가 여전히 노벨상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의 전당을 “세대를 막론하여 함께 어울리고, 세계적 석학과 국내 석학이 지식과 연구를 공유하는 일종의 과학에 관련되는 세계적 지식 석학들의 사랑방”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기후위기 같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아젠다를 석학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장으로 과학의 전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기획대로라면 아무 호텔이나 빌려서 행사를 치뤄도 될 것 같지만, 그의 계획은 웅대하다. 그는 한국, 중국, 일본이 함께 동참하는 사업으로 과학의 전당을 구상하고 있으며, 이미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매립이 가능한 부지를 찍어 놓았다. 약 50만평 정도를 지상과 지하로 나누어 지하는 세계적인 환락도시로, 지상은 세계적인 첨단도시로 만들자는 희망도 제시한다. 그는 과학의 전당을 통해 과거 인종전쟁에서 백인종이 뭉쳤듯이, 이제 황인종이 뭉칠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과학의 전당을 설립하면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무려 2030년까지 과학의 전당을 완공할 예정이란다.
 
선진국에 가면 훌륭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볼 수 있다. 국내의 박물관과 과학관은 전시를 주목적으로 하지만, 과학 선진국의 박물관은 연구를 주목적으로 한다. 첨단과학분야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각종 표본의 수집과 분류를 비롯해서, 과거 박물학이 담당했던 분야의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선진국의 자연사박물관이다. 한국에도 국립자연사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만약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면, 이제 선진국 문턱에 오른 한국에도 그런 시설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립대에서 제대로된 진화생물학 강의조차 열 수 없는 지경인 한국의 상황에서, 이런 박물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어떻게 충원하느냐다. 어쩌면 한국에서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주장하는 이들이야말로, 갈수록 대학과 연구소에서 퇴출되고 있는 기초과학의 적인지 모른다. 실용성과 상업성 때문에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초과학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이, 한국에선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변질되고 과학기술관료들의 휴양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희 전 장관이 순수한 마음으로 과학의 전당을 꿈꾼다고 믿고 싶다. 대기에 특수전자파를 발사해서 코로나 이동경로를 규명하자는 황당한 발언으로 과학기술계 원로로서의 권위마저 흔들리는 그이지만, 한국 과학계 원로들이 이런 대규모 기획을 꿈꾸는건 오직 자신의 정치적 욕망이 아니라,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서임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대장동 개발 같은 기획을 하기 전에, 먼저 과학계의 후속세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돌아봐 주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자식에게 이 천형을 물려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건립될 과학의 전당은 도대체 어떤 폐허가 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과학기술부 장관이라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과학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부디 그 격을 지켜주시길 바란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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