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덕분에 3·1운동 실상 알려져” 앨버트 테일러 살던 ‘딜쿠샤’ 복원
AP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 가옥 복원해 3·1절 시민 공개, 당시 삶의 흔적 담겨
입력 : 2021-02-25 17:17:13 수정 : 2021-02-25 17:25:36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공교롭게도 1919년 2월28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 브루스 테일러를 출산했어요. 3월1일(추정) 앨버트 테일러가 병실을 찾았는데 침구들 사이에서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하죠. 보통 서류가 아님을 알아챈 앨버트 테일러 덕분에 3월13일자 뉴욕타임즈에 3·1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습니다.(안미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독립운동가들의 재판과정 등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삶이 녹아있는 보금자리 ‘딜쿠샤 전시관’이 25일 공개됐다.
 
서울시는 앨버트 테일러가 1924년부터 1942년까지 18년간 살았던 가옥 ‘딜쿠샤(Dilkusha)’를 복원해 다가오는 3·1절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딜쿠샤는 1942년 앨버트 테일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이후 방치됐으나 2006년 브루스 테일러가 이 곳을 찾아 자신이 살았던 곳을 확인했고, 유족의 유물 기증과 관계기관의 복원 연구에 힘입어 옜 모습을 되찾았다.
 
안미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25일 딜쿠샤 전시관에서 당시 앨버트 테일러의 언론활동 관련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무엇보다 AP 특파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는 와부로의 접촉이 차단된 채 핍박받던 일제강점기의 참상을 누구보다 앞장서 취재하고 보도했던 언론인이다. 독립선언서를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제암리 학살사건과 독립운동가 재판과정을 참관했던 최초의 외국인으로 기록됐으며, 1941년 일제에 끌려가 수용소에 구금되기도 했다.
 
미국인인 테일러 부부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부부는 한국에 지내는 동안 특히 금강산을 수차례 여행할 정도로 애정을 표현했으며, 그림 재능을 살려 알고 지낸 한국인들의 얼굴과 복식, 표정 등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앨버트의 유해는 현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됐다.
 
안미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25일 딜쿠샤 전시관에서 당시 앨버트 부부의 주거양식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딜쿠샤 전시관은 단순히 건축 외형을 벗어나 20세기 초 조선에 살았던 외국인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복원과 고증에 신경썼다. 남아있는 사진을 바탕으로 거실과 각 방에 가구를 구해 배치하고 구할 수 없는 병풍과 주칠원반은 수개월에 걸쳐 복원작업을 진행했다.
 
딜쿠샤는 이들 부부가 조선의 혹독한 겨울추위를 견뎌야 했던만큼 벽난로가 곳곳에 배치됐으며, 습한 장마철에 대비해 큰 창과 작은 창을 앞뒤로 둬 습기 조절에 신경썼다. 딜쿠샤는 1920~1930년대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벽돌을 세워서 쌓는 프랑스식 ‘공동벽 쌓기(Rat-trap Bond)’라는 독특한 조적방식이 적용돼 건축사에서도 의미가 깊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이자 유물기증자인 제니퍼 L. 테일러는 “딜쿠샤를 복원해 전시관으로 개관한 서울시에 매우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가 25일 딜쿠샤 전시관 앞에서 전시관 개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서울시가 3.1절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딜쿠샤 전시관 전경. 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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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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