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팬데믹 시대, 제레미 주커·첼시 커틀러의 ‘음악 정원’
40분 단출한 구성만으로 설파한 ‘음악 치유의 힘’
5일 EP 앨범 ‘Brent 2’…“행복한 기억 떠올리는 음악이길”
2021-02-17 00:00:00 2021-02-17 10:31:1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흡사 본 이베어의 영혼 한 방울을 흡수한, Z세대의 ‘음악 정원’에 초청된 듯 했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와 첼시 커틀러가 지난 10일(한국시간) 선보인 온라인 콘서트 ‘브렌트 : 라이브 온 디 인터넷(Brent: Live on the internet)’은 단출한 구성만으로도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설파한 무대였다.
 
1997년생 소띠.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컬음) 음악가의 대표 주자. 지난 5일 발표한 EP 앨범 ‘Brent 2’의 첫 라이브 무대를 위해 이들은 소규모 숲을 연상시키는 세트를 세웠다. 은은한 분위기를 내는 노란빛 조명과 검게 처리된 주변의 공간 배경, 모래가 심어진 초록의 나무와 수풀들…. 
 
40분 간 평온하게 흘러가는 공연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연주가 투명한 피톤치드 같다는 것을. 나무 악기로 만들어 내는 공명의 울림과 화면을 비우는 여백의 미학. 잠시 맑은 겨울날, 후루룩 들이키는 평양냉면처럼 담백, 깔끔하다고도 생각했다.
 
제레미 주커(왼쪽)와 첼시 커틀러.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날 제레미와 첼시는 따뜻한 질감의 어쿠스틱 밴드 편제로 새 앨범 전곡을 실연했다. 앨범 첫곡 ‘this is how you fall in love’부터 특유의 따뜻한 포크풍 선율이 약동했다.
 
단출한 기타줄 튕김이나 피아노의 섬세한 타건 만으로도 생성되는 너른 잔향들, 트럼펫·첼로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겹의 선율과 패달 스틸기타를 진동시켜 일으킨 몽롱한 전자음, 미니멀 편곡에 맞춰 최소 박자로 뒤쫓는 드럼과 탬버린, 핸드셰이커 리듬의 잔물결. 
 
최근 화려한 기술을 도입하는 온라인 공연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정작 음악의 본질에 가까운 공연은 찾아보기 힘든 역설의 시대가 됐다. 그런 면에서 공연의 모든 요소들을 내고자 하는 사운드, 들려주고자 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제레미와 첼시의 공연은 오히려 돋보였다.
 
40분의 공연 끝에는 30분간 신곡 제작기도 들려줬다. 
 
“무대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 음악은 완연한 ‘무형(Intangible)’에 가깝습니다. 팬데믹 임에도 ‘풀밴드 라이브 쇼’로 여러분과 교감해야하는 이유입니다.”(제레미)
 
첼시 커틀러(왼쪽)과 제레미 주커.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레미는 서정성 짙은 포크풍의 발라드로 국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대표곡 ‘comethru’는 국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며 차트 상위권에 장기간 오르기도 했다. 2019년 9월 이틀간 진행한 첫 내한공연역시 모두 매진시킨 전력이 있다. 첼시 역시 깨끗한 기타 연주와 음색으로 주목받는 신예 뮤지션이다.
 
이번 앨범은 팬데믹 이후 이들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연인과의 사랑이나 부모님을 향한 애정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식(‘emily’, ‘parent song’). “팬데믹 이후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앨범의 방향은 하나였습니다.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주게 하는 것.”(제레미)
 
첼시는 1947년산 마틴 어쿠스틱 기타로 앨범 전체를 녹음했다.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이 기타는 “캠프파이어처럼 따뜻한 질감”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신형 클래식 기타에서 주로 들리는 ‘울리는 소리(Twanging)’가 적다는 점도 장점. 제레미는 업브라이트 피아노인 야마하의 U3로 뭉뚝한 소리를 그리는데 최대한 집중했다.
 
이번 앨범은 앞서 2019년 공동으로 낸 EP ‘Brent’의 연작이기도 하다. 전작과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이들은 “조금 더 성숙한 느낌으로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조금 더 특별하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며 “이별이나 불안에 집중됐던 것이 첫 앨범이라면 이번 앨범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을 노래한 ‘퓨어 러브 송’”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팬데믹 상황을 겪고 있을지라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생각을요.”(첼시)
 
첼시 커틀러(왼쪽)과 제레미 주커.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두 사람은 “팬데믹으로 서로의 작업물을 공유하며 남매나 쌍둥이가 된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사운드적으로는 풀밴드로 평소 즐겨듣는 본 이베어 같은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 장기화로 이들 역시 오프라인 공연 활동은 불투명한 상태다.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한 가지를 해야 한다면 뭘 하겠냐”고 묻는 질문에 이들은 “모든 것을 다할 것(ALL)”이라며 웃어 보였다. 
 
“소셜미디어로 팬들과 소통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리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무대 위에서 직접 만나 에너지를 교환할 그 날이 오길 정말로 바랍니다. 백신과 노마스크의 시대, 거리두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다해볼 겁니다.”(제레미, 첼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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