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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신원 검증"…광고 믿고 부른 심부름꾼이 '성범죄자'
재판부 "허위 광고로 성범죄 피해 발생…피해자에게 위자료 1천만원 배상하라"
2021-01-21 18:30:21 2021-01-21 18:30:21
성범죄 전력으로 전자장치를 찬 수행인을 소비자 집에 보낸 심부름 중개 업체가 최근 항소심에서 위자료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서울남부지법 민사3-3부(재판장 이주영)은 지난 15일 A씨가 인력 중개 플랫폼 서비스 업체 B사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에서 거짓·과장 광고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냈다. 앞서 1심에서는 원고가 전부패소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사실과 다른 피고의 광고를 믿고 여러차례 성범죄 전력이 있을 뿐 아니라 출소 직후로서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있는 상태였던 C를 수행인으로 고용하여 자신과 아이 홀로 있는 집 내부에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실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며 "이는 광고와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되고, 피고는 원고에 대해 표시광고법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6월 집 안 책장과 책상을 옮기거나 밖에 내놓는 데 일손이 필요해 고객용 앱에 요청 글을 썼다. 보수 3만원에 입찰된 C씨는 심부름을 하던 중 공구를 꺼내 A씨를 협박하며 추행했다. 그는 A씨를 간음하려다 벨소리를 듣고 도주했다. C씨는 특수강간죄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됐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
 
알고보니 C씨는 이전에도 성범죄 전력이 있었다. 그는 지난 2002년 3월과 2008년 5월 강간 등 치상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각 징역 5년과 10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 2월에는 전자장치 부착명령 10년을 결정받았다. A씨를 상대로 한 범행 당시에는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차고 있었다.
 
A씨는 플랫폼 업체 B사가 20% 수수료를 받는만큼 C씨를 고용해 지휘·감독했으니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B사는 2014년 설립 이후 고객이 다른 사람에게 의뢰할 업무를 심부름 중계 앱에 등록해왔다. 앱에 등록된 수행인들이 업무에 입찰하면, 고객이 업무 수행인을 선택해 직접 불러 보수도 주는 식이다. 수행인 등록 절차는 이름과 생년월일, 신분증 사진 업로드 등으로 심사를 받으면 되는 구조였다.
 
A씨는 업체가 여성이나 어린 아이만 있는 집 심부름에 부적합한 사람을 가려내야 함에도 범죄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며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손해 배상 책임도 물었다.
 
또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서비스에 소속된 모든 수행인이 엄격한 신원 확인과 검증을 거쳐 안전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내세워 거짓·과장 표시·광고 또는 기만적 표시·광고를 했으니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업체의 거짓·과장 광고는 인정했지만, C씨를 직접 고용했다거나 범죄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재판부는 B사가 일시 용역이 필요한 고객과 수행인이 연결되도록 고용 정보를 중개할 뿐, 사실상 이들을 고용했거나 업무를 지휘·감독했다고 보지 않았다. 앱 이용 약관에 회사가 고객이나 수행인을 대리하지 않고, 두 사람 간 거래 관계 등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다고 적힌 점이 근거였다.
 
수행인이 전적으로 고객의 요구대로 일하고 선택받는 점, 보수도 두 사람끼리 주고받는 점 등도 고려했다.
 
B사가 C씨의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는 주장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C씨가 정식 수행인으로 심사받을 당시 앱에서 '최근 5년 이상 형사상 처벌받은 이력이 없다', '성범죄 관련 범죄사실이 전혀 없다'는 항목에 모두 '그렇다'고 표기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형사처벌 전력은 피고가 별도로 진위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고, 인터넷 상거래나 앱 서비스의 특성상 정식 수행인 전원에 대한 본인 면접 절차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피고가 C의 불법행위를 예상할 수 있었다거나, 그의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B사에 표시광고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안전 문제에 있어 걱정이 없다고 판단할 근거는 딱히 없었다"며 "그럼에도 피고는 서비스를 광고하면서 그와 다르게 서비스 소속 수행인들이 모두 엄격하게 신원이 검증됐고, 안전 문제에 걱정 없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광고해, 이는 사실을 은폐한 기만적 광고이거나 사실과 다른 거짓·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남부지법 청사 전경. 사진/서울남부지법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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