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재벌 증거은닉 흉내낸 산업자원부
입력 : 2020-10-28 06:00:00 수정 : 2020-10-28 06:00:00
지금까지 한국의 재벌기업은 검찰 수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또는 과정에서 자료를 감추거나 삭제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재벌만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기관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다소 충격적이다.
 
지난 20일 발표된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이 한밤중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이 2019년 11월 1차로 월성 1호기 관련 최근 3년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산업부는 소송 동향 등 일부 자료만 제출했다. 대통령비서실 보고문건 등 문서 대부분이 누락됐다.
 
감사원이 추가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자 산업부 직원들은 일요일 오후 11시24분부터 2일 오전 1시16분까지 2시간 가까이 월성 1호기 관련 자료가 담긴 폴더 122개를 삭제했다. 일요일에 작업한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없어진 폴더에는 모두 444개의 문서가 들어 있었다. 감사원은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문서 복원을 시도했지만 324개만 복구됐다. 나머지 120개는 복구에 실패했다. 그 문서가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감사원 손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사실 산업자원부의 자료삭제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은폐요, 증거인멸이다. 산업부는 국가기관으로서 성실하게 자료를 제출하고 조사에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의무를 망각했으니, 그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비리나 불공정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자료들을 숨기곤 했던 재벌의 행위와 꼭 닮았다.
 
이를테면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수사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은 문제 소지가 있는 자료를 삭제했다. 또 회사 가치평가가 담긴 문건을 조작해 금감원에 제출했다. 기상천외한 방법도 동원됐다. 회사 공용서버 등 분식회계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물을 공장 바닥 아래 숨겼던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56) 부사장 등 증거인멸에 관여한 사람들은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메이트'의 판매사인 애경산업 전 대표도 유해성 관련 자료를 은닉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 받았다.
 
한국조선해양 직원도 지난 2018년 10월 공정위 현장조사를 앞두고 조직적으로 자료를 은닉 또는 폐기했다. 이에 공정위는 회사에 과태료 1억원을 부과하고, 소속 직원 2명에도 과태료 2500만원을 물렸다.
 
이렇듯 재벌기업의 자료은닉과 조사방해 행위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들통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자료은닉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자는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문책과 처벌을 받는다. 이번에 자료은폐에 가담한 산업부 직원은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최종책임자가 누구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행 감사원법에 따르면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공무원과 감사를 방해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산업부 직원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지는 않았다. 다만 산업부에 직원 2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면서 수사기관에 수사참고자료로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월성 1호기 폐쇄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옳다고 믿는 쪽과 잘못됐다고 믿는 쪽은 여전히 팽팽히 맞선다. 모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전문가나 모두 마찬가지다. 조기폐쇄가 타당한 것이었는지는 식견 높은 전문가와 정부당국이 판단할 일이다.
 
그렇지만 감사원 요구자료를 은폐하고 감사를 방해한 것은 찬성과 반대라는 입장차와 별개 문제다. 국가기본질서를 해치는 행위다. 만약 산업부의 이번 자료은닉 행위를 그냥 용인한다면 어떻게 될까. 1차로 다른 국가기관이 배울 것이다. 민간기업들도 '용기'를 얻을 것이다. 검찰이나 공정위 또는 금융감독원이 모종의 자료를 요구한다 해도 거부할 근거가 생길 것이다. 웬만한 자료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삭제와 은폐를 손바닥 뒤집듯이 할 것이다. 결국 공권력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이번 일에 대해 사직당국이 보다 단호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관장으로서 책임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 장관이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을지 두고 볼 일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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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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