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희·이지유 기자] 금융당국이 내년 햇살론 공급을 늘리며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에 나서지만, 도덕적 해이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습니다. 햇살론 대위변제율이 20%대 후반까지 치솟는 등 부실 부담이 여전히 큰 상황인데요. 정부가 장기 연체자에 대한 대규모 채무조정까지 추진하면서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큰 만큼, 차주의 실질적인 상환능력을 높일 사후관리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신 갚아준 돈만 1조…회수율은 저조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27년도 예산안'에서 햇살론 특례보증과 햇살론유스 공급 규모를 올해 2조6300억원에서 내년 2조7800억원으로 1500억원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재정도 4797억원에서 5274억원으로 477억원 늘어납니다.
정책서민금융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소득·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이나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것을 막는 금융 안전망입니다.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와 자립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자금 공급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대위변제 부담입니다. 대위변제는 차주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금융회사에 대신 갚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2023년 21.3%에서 지난해 26.8%로 상승했습니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도 같은 기간 14.5%에서 28.8%로 뛰었습니다. 햇살론카드와 햇살론유스 역시 지난해 각각 22.2%, 13.6%를 기록했습니다.
대위변제로 빠져나가는 돈도 3년째 1조원을 웃돌고 있습니다. 전체 햇살론 대위변제액은 2023년 1조5198억원에서 2024년 1조4675억원, 지난해 1조110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금액 자체는 감소세지만 여전히 연간 1조원 넘는 돈이 대위변제에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대위변제 이후 회수도 쉽지 않습니다. 차주가 대출을 갚지 못해 대위변제가 이뤄지더라도 빚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증기관이 차주에 대한 구상권을 갖게 되지만 실제 회수율은 10% 초반대에 그칩니다.
관건은 그다음입니다. 소득이나 고용 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지원에만 의존하면 상환능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시 어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대출 공급이나 채무조정에 그치지 않고 지원 이후 차주의 신용 회복과 상환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대위변제 부담이 정부 보증으로 계속 흡수되는 구조가 이어지면,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서민 대상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정책금융에만 기대는 현상이 굳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서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햇살론 같은 정책금융을 확대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필요하지만, 정부가 보증을 통해 공급 규모를 계속 늘리는 방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조 원장은 "정책금융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서민 대상 상품을 개발하고 심사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정부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면서 "정부 지원도 일시적인 자금 공급에 그치지 않고 소득 창출이나 자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사진=금융위원회)
6~7조 채무조정 추진… 도덕적 해이 논란
정부가 별도로 추진하는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도 논란거리입니다. 정부는 코로나19 당시 대출을 받은 뒤 장기 연체에 빠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6조~7조원 규모의 채무조정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2020~2023년 은행권과 정책금융기관이 공급한 개인사업자 대출 358조7000억원 가운데 154조7000억원이 아직 상환되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도 6조3000억원에 달합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6조~7조원 규모를 채무조정 검토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구체적인 방안은 올해 4분기 중 확정할 예정입니다.
이를 두고 취약차주의 경제적 재기를 위해 채무조정이 필요하지만 지원 대상과 수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상환 여력이 있는 차주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되거나 향후 채무조정을 기대해 정상적인 상환을 미루는 일이 발생할 경우 상환 유인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을 키울 수 있어서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채무조정제도를 분석하면서 도덕적 해이 방지와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을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채무조정이 채무자의 상환 유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금융회사의 신용 공급이 위축될 경우 다른 금융소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채무조정 과정에서 일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지원 대상에 대한 심사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지원안이 나오면 어떤 재원으로 어떻게 집행되는지와 재정 건전성,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관련 내용은 오는 11월 초 발간 예정인 예산안 분석 보고서 등에 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우려는 실제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감지됩니다. 한 금융소비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몇 년 동안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아온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허탈할 수밖에 없다"며 "연체한 사람에게만 계속 혜택이 돌아간다는 인식이 생기면 앞으로 누가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고 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공급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취약차주가 정상적인 상환 궤도로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겪는 차주에게는 소득 창출과 고용으로 이어지는 정책이, 구조적으로 상환능력을 잃은 차주에게는 계속된 금융지원보다 복지정책 연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입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조정을 금융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해 위기에 처한 사람이라면 금융기관에서 계속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긴급복지 같은 복지정책으로 연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처음에는 상환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몇 차례 지원을 받아본 뒤 상환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금융 시스템에서 정리하고 복지 시스템으로 보내는 식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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