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윤석열정부의 정책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닌 야근 확대, 크런치 타임(강도 높은 근무) 확대 정책에 다름없다. 노동의 양보단 질을 높이는 방향에서 나아가야 한다."
IT업계가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는 노동시간 유연화보단 포괄 임금제 폐지가 더 시급하다면서 열악한 노동 실태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해 매월 일정액을 연봉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폐지되지 않아 무리한 야근과 밤샘노동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3일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에 나서는 모습. (사진=이선율 기자)
오세윤 전국화섬식품노조 IT 위원장(네이버 지회장)은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는 사용자를 대표하는 재계의 말만 들을 게 아니라 업계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견도 함께 청취해야 한다"면서 "IT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 지회장은 "IT산업이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로 비유되는데, 그러한 장시간 노동의 상징처럼 인식된 건 크런치 모드라고 불리는 살인적 노동 때문에 과로사 하는 일이 빚어져서다"라며 "IT업계에서 관련 서비스 및 게임이 성공하기 쉽지 않아 장시간 노동이 많이 발생한다. 결국 이러한 리스크를 오롯이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해결한다. 이를 허용한 가장 나쁜 제도가 포괄 임금제"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IT 위원회는 IT업계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무 환경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8일부터 실시해 12일까지 1834명이 참여한 해당 설문조사에서 지난 2021년 10월 IT 회사가 몰려 있는 경기도 성남 지역 IT 기업의 60%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응답자의 96.4%가 IT 및 사무연구직의 포괄임금제 폐지에 동의했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더욱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문제삼았다. 오 지회장은 "2018년 네이버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에야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 시간 근로제를 도입했다"면서 "현재 노동관계법이나 여러 법령에서 회사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근무제를 변경할 수 없도록 근로자 대표에게 합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직원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한채 장시간 노동을 이행하고 있다"고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IT업계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선 충분한 휴식과 안전성이 필요하다"면서 "과거처럼 노동의 양을 늘리는게 아닌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이 공짜라서 너무나 손쉽게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게 하는 포괄임금제 제도를 우선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선율 기자)
실제 연구에서도 장시간 노동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와 통계청 사망자료를 연계해 분석한 결과 35~44시간 근무자를 기준으로 비교했을때 45~52시간 근무한 사람이 3.89배 높았고, 52시간 초과 근무자가 3.74배로 자살에 의한 사망위험이 증가했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장시간 노동은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정신질환, 비만, 고혈압 등과의 관련성에 대해 국내 외 연구에서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를 근거로 산재보상보험에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과로사의 질병인 뇌혈관 및 심장질환이 발생할 경우 관련성을 인정해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인력 증원이 없이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제도 등을 실시하는 일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저희 소속 사업장에 들어와있는 사업장 중에서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론 1일 16~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다수 사업장이 인력증원을 하지 않기에 노동시간 강도는 줄지 않고, 이에 따라 건강권 침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공짜야근 근절과 임금명세서 교부는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임과 동시에 기초 노동질서를 확립하는 시작"이라며 "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은 고용부 근로감독을 통해 다른 노동법 위반까지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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