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꼭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충무로에선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성공적인 연출 데뷔를 일궈낸 케이스가 그리 많진 않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스타 감독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건 텍스트와 영상 문법의 분명한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는 작법이라고 하고 ‘영상’은 연출이라고 한다. 두 차이의 간극은 상상 이상이다. 상상을 손가락으로 옮겨 내 글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상상을 눈으로 옮겨 실체화 시키는 연출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오랜만에 이 차이를 ‘지근거리’로 좁혀 버린 실력자가 등장했다. 우선 그가 만든 영화, 정말 재미있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스크린 상영이 예정돼 있던 작품이다. 큰 화면으로 볼 수 없으니 아쉬울 듯하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OTT 공개로 전환된 이후 이 감독의 영화는 전 세계 시청률 순위 3위까지 치고 올라섰다. 2017년 ‘감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범죄 드라마 ‘프리즌’을 선보인 나현 감독. 그는 5년 뒤 괴물 같은 한 남자를 만들어 냈다. 이 남자가 벌이는 특급 액션이 화끈하고 통쾌하다.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경계까지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넷플릭스 영화 ‘야차’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나현 감독이다.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야차’는 2020년 중순 모드 촬영을 마무리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된 상태이지만 당연히 스크린 개봉이 목적인 영화였다. OTT플랫폼에 맞춰 제작된 작품이 아니기에 연출자 입장에선 모든 게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OTT 역시 발달하고 이용 환경도 업그레이드 되면서 스크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야차’의 진면모를 감상하는 데 걱정했던 수준은 아니라고 전했다.
“보여지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상당히 중요한 영화였죠. 사실 그래서 걱정을 좀 하긴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극장 개봉을 주장할 수도 없었죠. 공개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었기에 지금은 결과물을 감상하게 된 상황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되니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해서 설레는 부분도 실제 있네요(웃음). 그리고 저도 보니깐 모니터나 스피커들도 기능이 좋아져서 제 의도가 꽤 많이 전달이 될 듯 하더라고요.”
나현 감독에게 ‘야차’의 출발은 할리우드의 전유물과도 같은 스파이 액션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특히 로망으로만 그칠 게 아니었다. ‘한국형 스파이 액션’을 넘어 동북아 지역을 무대로 할리우드와 같은 멋진 스파이 액션이 우리에게도 있단 걸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007 미션 임파서블 그리고 본 시리즈 같은 느낌을 넘어설 결과물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단다. 그게 바로 ‘야차’였다.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설명하신 그런 느낌을 주는 스파이 액션을 구상하다 보니 공간이 필요했죠. 조사를 해보니 중국 선양이 눈에 띄었어요. 여기가 중국적 색채가 거의 없는 엄청난 대도시에요. 이국적인 느낌도 강했죠. 여길 무대로 동북아 지역의 스파이 전쟁을 그려봐야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떠올린 인물이 괴물 같은 남자였어요. 통제 불가능한 무자비하고 거친 느낌의 남자. 스파이 하면 굉장히 댄디한 느낌이잖아요. 그걸 깨고 싶었고 그래서 나온 게 ‘지강인’이란 인물이고 설경구 선배를 떠올렸죠.”
주인공 ‘야차’를 연기할 배우로 설경구를 선택했다. 그와 함께 할 블랙팀 멤버 4명도 캐스팅이 완료됐다. 하지만 사실 나현 감독에게 ‘야차’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엄청난 ‘미션 임파서블’에 해당했다. 나 감독을 포함해 제작진은 ‘야차’ 완성의 필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야차’ 제작 완료의 최대 필수 조건이었다. 나 감독이 공개한 세 가지, 모두 호락호락한 조건이 아니었다.
“저와 제작진 모두가 꼽은 전제 조건이 3개였어요. 첫 번째가 공간이었죠. 중국 선양을 갈 수 없었어요. 여러 제약이 있었죠. 그래서 선양이 배경이지만 거길 대체할 공간이 필요했죠. 두 번째는 외국인 배우들과 국내 배우의 소통 문제였어요. 연기에서의 언어 문제가 관건이었죠. 마지막 세 번째는 총기 액션입니다. 국내 영화 가운데 저희가 아마 총알 소비량으로선 역대 최대일 겁니다. 그 총기 액션의 스펙터클. 이 세 가지가 놓치면 안될 조건이었습니다.”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그렇게 기준점으로 삼은 조건 세 가지. 우선 첫 번째 공간은 영화적으론 중국 선양이 배경이다. 하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중국 선양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초반 멋진 야경은 홍콩이다. 이후 중국 선양 배경 분량은 대만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다음이다. 영화 속 등장 공간 모두가 이국적인 느낌이 흘러 넘쳤다. 하지만 러닝타임 중 꽤 많은 분량이 국내에서 이뤄졌다.
“(웃음) 진짜 저희 미술팀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해외 로케도 당연히 있죠. 그런데 꽤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소화했습니다. 보시면 한국이 아닌 듯한 곳이 너무 많은데 그게 사실은 한국 촬영입니다(웃음). 하나 공개를 해드리면 일본 영사관에 침투하는 장면에서 지하 공간은 세트에요. 그런데 동굴 장면이 나와요 그건 또 울산입니다. 건물 외곽은 대전이고, 복도에서 총격신이 나오는 데 그건 또 인천입니다. 하하하.”
두 번째는 총기다. ‘야차’에서 가장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바로 ‘총기 액션’이다. 역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다양한 총기 그리고 가장 많은 총알이 소비됐다. 총기를 다루는 것도 배우들에겐 특명이 됐다. 나 감독은 첫 미팅 때 배우들에게 모형 총기(권총)를 하나씩 지급했다고. 손에 익히고 분해 결합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숙지를 시켰단다. 결국 촬영이 시작되면서 완벽한 블랙팀 요원들이 됐다고.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총기는 손에 익지 않으면 스크린에서 바로 티가 나요. 그래서 첫 미팅 때 총기를 하나씩 줬죠. 실탄 사격도 했었고, 파지법 등도 특수부대 출신 교관님들에게 교육을 받았어요. 등장하는 총기만 총 36종류가 될 거에요. 총기도 각 캐릭터에 맞게 다르게 지급했죠. 지강인은 우리에게 익숙한 베레타. 이엘은 글록, 이 총은 ‘블랙 위도우’가 쓰는 총이에요. 송재림은 총기 담당이라 다양한 총기를 능숙하게 다뤘죠. 특히 이 총기들의 사운드도 모두 다르게 잡아냈어요. 그게 총기 액션의 핵심이라 생각했죠.”
해외 로케이션 이국적 풍광 그리고 국내 상업 영화 장르에선 흔치 않은 스파이 액션 여기에 국내 상업 영화 사상 가장 화끈한 총기 액션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볼거리로만 가득하다. 하지마 이 가운데에서도 나현 감독은 치밀하고 또 풍자적인 내용도 빼놓지 않았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거대 기업 총수와 정의감에 불타는 현직 검사의 포토라인 맞대면. 우리에겐 상당히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야차’에서 이 장면은 꽤 날카롭게 묘사돼 있다.
“몇몇 분들은 그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하시더라고요. 박해수가 연기한 한지훈 검사와 그룹 회장의 대사 때문인데. 사실 그게 아제 개그잖아요(웃음). 근데 전 그걸 웃음으로 활용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기 위한 캐릭터의 장치로 활용했죠. 농담처럼 던진 말에 고개를 숙이자 인사를 한 것처럼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고. 이걸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해 뭔가 통쾌함을 주려 해봤는데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극중 등장한 국내 한 방역업체 로고 등장에는 사실 의아함을 느낀 시청자들도 많았다. 일부에선 너무 뜬금 없는 설정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일종의 PPL로 착각하는 시청자 의견도 많았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PPL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해당 장면에서의 방역 업체 등장은 100% 나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의도했던 설정이라고.
“해당 업체의 도움으로 로고를 사용해 장면을 만들었죠. 우선 PPL절대 아닙니다(웃음).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 장면에선 그런 설정으로 제가 썼기에 방역업체가 나와야 했죠. 그런데 중국의 방역 업체 로고를 사용하자니 ‘이게 방역 업체인지 뭔지’ 관객들이 알 수 있을까 싶었죠. 차에다 쥐를 그릴까 바퀴벌레를 그릴까 고민도 해봤어요. 그러다 영화에 등장한 방역 업체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다행히 해당 업체가 중국 상해에 지점을 갖고 있더라고요.”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공개가 이뤄진 상태에서 공개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 세계 영화 시청률 순위 3위를 기록한 ‘야차’다. 넷플릭스 특성상 후속편 제작 가능성이 궁금해진다. 영화에서도 마지막 결말이 이른바 ‘열린 결말’ 스타일로 막을 내린다. 나현 감독은 당초 속편 제작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초반 분위기가 너무 좋아 배우들과 농담 수준으로 속편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단다.
나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결말 부분은 속편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에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속편 제작 의도로 비춰져서. 기회가 된다면 뭐 얼마든지 하고는 싶죠. 사실 촬영 중간에 속편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한 것도 있어요. 뭐 좋은 결과가 계속 이어진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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