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131 연암과 한비자 식 개혁, 다시 인순고식·구차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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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한비자 식 개혁, 다시 인순고식·구차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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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한비자 식 개혁, 다시 인순고식·구차미봉!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상식과 비상식’,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비일상’의 긴 터널을 지나는 듯하다. 대한민국을 도금하던 권력 카르텔이 조금씩 벗겨지며 드러나는 현상이다. 지지부진한 개혁을 보면서 휴헌 간호윤의 ‘참(站)’100(2025년 4월 4일)에서 언급했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선생을 다시 소환한다. 선생은 조선 후기의 가장 예리한 현실 비판가이자 실학자였다.
선생은 사회 병폐의 근본 원인을 “인순고식, 구차미봉”―옛것에 안주하고 눈앞만 가리며 근본 개혁을 미루는 태도―에서 찾으며 “천하만사 이차팔자이타괴(天下萬事 以此八字而墮壞, 천하만사가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이지러지고 무너진다)”라 하였다. 이는 조선 관료사회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이자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여덟 글자 경고이다.
이 여덟 글자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의 냉철한 법치사상과 함께, 왜 개혁은 반복적으로 선언되면서도 실패하는가를 꿰뚫는다. 그의 개혁론 핵심은 ‘사람과 제도를 모두 바꾸라’이다. 그는 인간의 도덕심이나 선의에 기대는 통치를 부정하며 “사람을 믿지 말고, 법과 제도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다소 유감인 이 개혁론은 도덕이 아닌 구조, 인격이 아닌 제도의 설계였다.
그의 사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법(法)’―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규칙. 둘째, ‘술(術)’―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통치 기술. 셋째, ‘세(勢)’―제도를 떠받치는 권위. 그는 이를 개인의 재능이나 도덕성보다 안정적인 통치 기반으로 보았다. 개혁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 즉 제도 속에서 공정과 책임을 작동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법원과 검찰개혁은 이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법을 독점하며 ‘제도 위의 권력’으로 군림해 왔다. 이는 정의 실현의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정치적 개입·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이란 사생아를 줄줄이 낳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개혁은 권한을 분산하고 책임을 제도 속에 묶는 것이다. ‘사람을 믿는 개혁’이 아니라 ‘제도를 새로 짜는 개혁’이다.
그러나 한국의 개혁은 언제나 절반에서 멈추었다. 연암 박지원은 이미 200년 전에 그 이유를 ‘인순고식, 구차미봉’이라 갈파했다. ‘인순(因循)’은 옛 관례에 끌려 새것을 두려워하는 태도, ‘고식(姑息)’은 당장의 평온을 위해 썩어 문드러진 문제를 덮는 처세, ‘구차(苟且)’는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가 마음, ‘미봉(彌縫)’은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꾸며 대는 행태다.
한비자의 눈으로 보면 이는 법보다 사람을 믿고, 제도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병리다. 개혁은 권력 논리와 기득권 타협 속에 흐려지고, 법과 원칙은 권력의 사정 앞에서 굴복한다. 이것이 연암이 말한 여덟 글자의 현대적 버전이다.
개혁은 법 위의 사람을 없애는 일이다. 한비자는 “법을 어기는 자가 군주라 해도 벌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군주에 대한 경계이자 ‘권력은 법 아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검찰·법원 개혁의 본질 역시 다르지 않다. 법원이나 검찰이 ‘정의의 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법 위의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고, 법과 제도의 절차 속에서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법치는 권력을 억누르는 장치이자 책임을 분명히 하는 시스템이다. 한비자의 개혁이 ‘제도 중심의 국가’를 세우려 했다면, 오늘의 개혁은 ‘제도 중심의 정의’를 세우려는 시도다.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의지와 일관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연암의 말처럼 인순고식과 구차미봉은 공직사회와 정치의 언어 속에 늘 지남철 역할을 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세워도 지키지 않으면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게 제도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은 제도를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제도를 스스로 지키는 문화, 즉 법을 존중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회적 관습이 선손걸어야 한다. 한비자의 법가 정신과 연암의 비판은 모두 이 지점을 향한다. 제도를 스스로 지키는 문화가 추앙받고 법이 권력 위에 설 때 비로소 개혁은 완성된다.
글┃간호윤(인하대학교 프런티어창의대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