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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팬덤정치' 이번 기회에 끝내야
2023-01-18 06:00:00 2023-01-19 09:35:07
문제는 늘 정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 것은 전쟁도 질병도 재해도 아니었습니다. 정치가 그랬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더 이상 부연한다면 사족일 겝니다.
 
하지만 정치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으면, 정치는 더 이상 그게 아닌 것이 됩니다. 독재정치·밀실정치·패거리정치 따위의 '나쁜정치' 말입니다. 이것들은 정치의 사전적 정의에 비춰봐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일 지언정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에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반 헌법적인 행위임은 물론입니다. 
 
수많은 민주항쟁에서 흘린 시민의 피로 이 나쁜정치를 역사에서 씻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스러운 세계의 역사였습니다. 시민의 마지막 권리인 저항권으로 정의되는 이 거룩한 행동은 나쁜정치의 위협 속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최수의 수술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특히 한국에서는 새로운 나쁜정치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팬덤정치' 말입니다. 이 나쁜정치는 가짜 민주주의로 무장한 극성팬들이 저마다의 계산으로 각자의 지도자를 옹립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상대 정당과 지도자는 덮어놓고 주적이며 그저 타도의 대상입니다. 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거나 동조하지 않는 의견은 그냥 모두 잘못되고 어리석고 반민주적인 것입니다. 급기야 자기들끼리 조차도 주류-비주류로 편을 갈라 세포분열을 하는가 하면 서로 물고뜯고 겁박합니다. 여차하면 지도자도 갈아치웁니다. 이들 중에는 가짜뉴스로 선동하고 뒤를 챙기며 기생하는 '스피커들'도 있습니다.  
 
이러니 옹립된 지도자들도 극성팬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도 소신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이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안 가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기세입니다. 더 자극적이고, 더 공격적이고, 더 충격적인 짓들을 서슴지 않습니다. 국가와 시민은 진즉에 안중에도 없고 '지지층 결집'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정당까지 극성팬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판입니다. 다양성 인정이나 소통 등의 노력은 벌써 개가 물어갔습니다.
 
이런 구도만 놓고 보면 요즘 정치 지도자들이나 정당은 극성팬들에게 사육되고 있는 것과 진배 없습니다. 
 
그러면서 저마다 매스컴에 나와서는 짐짓 화합과 통합, 협치와 상생을 강변합니다. 중도층을 껴안겠다고 합니다.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합니다. 요즘은 소도 잘 안 웃습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더 깊이 빠지는 모양새인데,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다. 
 
폭주를 견제받지 않으니 팬덤정치는 이제 혐오정치로까지 변질됐습니다. 명색이 국회의원·장관이라는 자들 입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언론도 고삐를 놓아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빠듯한 애먼 시민만 피로감에 죽어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저 밉상들은 우리가 뽑아 저 자리에 앉혔으니 말입니다.
 
팬덤정치가 정말 위험한 것은 약도 없다는 것입니다. 독재정치나 군부정치 등 과거의 나쁜정치는 시민들이 수괴를 끌어내리면서 해결됐습니다. 그러나 팬덤정치는 지도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이자 유권자들의 문제입니다. 어느새 부터인가는 극성팬과 상식적 지지자의 구분도 모호해졌습니다. 그만큼 변화무쌍합니다. 폐에 암덩이가 생겼다고 해서 흉부를 모두 잘라내고 드러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시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오랜만에 불어오는 이번 정계개편 바람은 팬덤정치 척결을 시작해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위정자들이 이번에도 잇속 계산으로 이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키지는 않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청원이나 의견서라도 보내야 하겠습니다. 
 
'번거롭고 귀찮다, 관심 없다' 외면만 하다가는 정말 회생불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종국적으로는 공격이나 조리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무관하게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정치이고, 그것을 뜯어고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최기철 미디어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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