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냥 바라만 봐도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이 바짝 마른 상태일지라도. 극심한 가뭄이 덮친 말라 비틀어지다 못해 거북이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진 논바닥일지라도. 그는 단 한 번에 촉촉한 기운을 불어 넣어 줄 것 같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충무로 감독들은 로맨스를 구상하면서 0순위로 항상 이 배우를 주인공으로 낙점하고 얘기를 만들어 나간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이지만 그 안에서 따뜻하고 푸르스름한 새싹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반대 이미지는 역시다. 청순 로맨스 만화에서 곧바로 등장한 것 같은 이미지. 그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려낸다면 딱 이 배우의 모습이다. 사실 이래저래 다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 한지민의 얼굴을 보면서 로맨스의 감성을 못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감독들은 로맨틱한 감성을 떠올릴 때면 무조건 ‘한지민’을 떠올리면서 얘기를 풀어가고 또 한지민의 얼굴을 스크린에 투영시킨 채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국내 ‘로맨스 장르’의 대가 곽재용 감독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해피 뉴 이어’란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연말 로맨스 종합 선물세트에서 한지민의 얘기를 가장 공감되고 또 상상하는 그대로의 이미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단 것을.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해피 뉴 이어’는 연말이면 등장할 법한 기획성 영화다. 일종의 연말 이벤트 같은 느낌이다. 여러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감정의 굴곡과 사건을 연말의 설레는 분위기와 맞물려 끌어가는 얘기를 그린다. 한지민은 극중 주요 배경과 무대가 되는 호텔의 ‘캡틴’(매니저) 소진역을 맡았다. 오랜 친구 승효(김영광)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한지민이 가장 힘든 시기에 다가온 작품이었단다.
“영화는 참 밝은 내용인데,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시기가 저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의 시기였어요. 어떤 사건을 겪은 건 아닌데, 마음이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코로나’로 준비하던 작품들도 미뤄지고 지쳐있을 시기였죠. 그 시기에 받은 건데 되게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의외로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했었는데, 소진은 되게 밝더라고요. 나중에 봐도 고마운 마음이 클 듯 했어요.”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한지민이 ‘해피 뉴 이어’ 출연을 결정한 ‘힐링’의 느낌도 중요했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분량이 작아서’라고 웃는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여기서 농담은 당연히 ‘분량’ 얘기였지만 진담은 다른 이유다. 언제나 작품 출연 이후 흥행 성적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었다고. 그런데 주변 지인들이 ‘해피 뉴 이어’ 출연을 적극 추천했단다. 당시 한지민에겐 무조건 필요했던 작품이라고.
“진짜 분량이 적은 게 좋았어요(웃음) 근데 그것보다도 다른 쟁쟁한 동료들 그리고 선배님들이 함께 하시니 내가 다 짊어지고 안가도 되겠다 싶었죠. 한 번은 친한 동생이 ‘언니가 맨 앞에서 다 짊어지고 안가도 되잖아’라면서 출연을 적극 추천하더라고요. 그때가 5월쯤이었는데, 그 말에 저도 ‘소풍 가듯 해보자’란 생각으로 임했어요. 저한테 에너지를 채워 준 작품이에요.”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작품 속 인물적으로 한지민은 짝사랑을 하는 인물이다. 한지민은 그 동안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는 인물, 혹은 함께 사랑을 하고 돌고 돌아 그 사랑이 완성되는 관계를 연기해 왔다. 이번에는 오롯이 짝사랑이다. 그리고 눈치도 좀 없는 그런 인물이다. 덤벙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 속 한지민과는 꽤 거리가 먼 그런 모습이다. 그게 한지민은 더 좋았단다.
“전 소진이 같은 느낌과 모습이 많이 좋았어요. 제가 그 동안 해보지 않던 사랑이잖아요. 항상 사랑 받거나 사랑이 진전되는 그런 로맨스였잖아요. 혼자 사랑하고 혼자 고백도 망설여 보고 결국에는 혼자 남사친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이런 연기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현실의 한지민도 비슷해서 사실 좀 되게 설레였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보다 되게 둔해서 제가 고백도 못하고 제가 좋아한다 사인을 주셔도 잘 몰라요(웃음)”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실제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한지민이 연기한 소진을 좋아하는 듯한 모습인데 정작 소진만 그걸 모르는 듯해서 답답했다. 실제 한지민이 딱 그렇다고 웃는다. 그는 사랑 연기를 정말 많이 해봤으니 주변의 사인에 아주 눈치가 빠를 듯 하지만 오히려 정 반대라며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얼마나 모르면 친 언니에게 애꿎은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영화에서도 진짜 눈치가 정말 없는 인물이잖아요. 하하하. 근데 현실의 한지민은 더 그래요. 저 완전 무딘 편이에요. 그냥 몰라요(웃음). 제가 친 언니랑 남자 얘기를 많이 해요, 제가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 그러면 언니가 ‘너 좋아해서 그런거야’라고 딱 잡아주죠. 물론 그럴 때마다 제가 ‘뭔 소리야! 아냐’라고 부인하는 데 결국에는 언니 말이 다 맞더라고요. 하하하. 근데 전 제가 관심이 있어야 진행이 되는 스타일이라. 그 관심이 도대체 언제였는지(웃음)”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그들 각자의 사연과 그들 각자의 로맨스가 그들 각자의 색깔에 맞게 조율이 돼 있었다. 동화 속 로맨스부터 10대의 풋풋함 그리고 40년 만에 만난 장년 동창 커플의 로맨스까지. 이 모든 로맨스는 곽재용 감독이란 거장의 눈을 통해 현실 속 동화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곽재용이란 감독이 아니면 ‘해피 뉴 이어’ 동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감독님 만의 해맑은 느낌이 있어요(웃음). 모니터에 비춰진 배우들 모습을 보시고 본인이 더 설레는 감정을 드러내세요. 너무 귀여우세요. 그리고 너무 순수하시고. 그러니 이런 따뜻한 영화가 나오는 구나 싶었죠. 현실에 맞닿은 동화 같은 얘기가 딱 감독님과 너무 잘 어울렸어요. 영화 속 그 어떤 커플들의 얘기도 지나칠 수 없는 정도로 상상을 자극하는 동화잖아요. 지금 생각해도 또 행복해지는 느낌이에요.”
배우 한지민. 사진/CJ ENM, 티빙(TVING)
너무 힘든 2021년 이었다는 한지민이다. 하지만 ‘해피 뉴 이어’가 힐링을 안겨줬고 그 상처를 치유해줬단다. 영화 제목처럼 이제 한지민에겐 ‘행복한 새해’가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지치고 지친 한 해였다. 다가오는 ‘뉴 이어’에는 좀 더 행복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며 웃는다. 꼭 그러길 바란다고.
“올해 연말에는 모두가 생각한 행복한 시간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니잖아요. 아쉽고 슬프죠.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어려운 데 그 시기에 이렇게 개봉할 수 있단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꼭 내년에는 저의 영화처럼 ‘해피 뉴 이어’가 됐으면 해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우리 모두 기다리는 해피한 새해가 되길 꼭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