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됐던 판사들이 재판부로 복귀한 가운데, 기소는 되지 않았지만 사법농단으로 징계를 받은 판사들이 중요 형사사건을 맡아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이 또다시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존재하고 선거재판을 맡을 경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관 탄핵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6일 법원 등에 따르면 사법농단으로 징계를 받았거나 징계 청구 대상에 오른 판사들 일부가 중죄를 다루는 형사합의부에 배당됐다. 의정부지법은 지난 24일 사무분담을 발표하면서 형사13부의 재판장에 정다주 부장판사를 배치했다. 의정부지법에서 형사13부는 선거, 외국인, 마약, 성폭력 등 중범죄를 심리하는 재판부다. 정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문건을 다수 작성 혐의로 감봉 5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사법정책실 심의관으로 있을 때 헌법재판소 견제 문건 등 작성에 관여해 견책 처분을 받은 문성호 부장판사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의 형사합의부에 재직 중이다. 법원행정처 인사실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문건작성에 관여했지만 징계는 받지 않은 노재호 부장판사는 광주지법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성폭력, 선거, 참여재판을 맡고 있다.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이 선거와 구속시킬 수 있는 범죄 사건을 심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사건 형사건 소송 당사자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맡는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특히 형사사건은 국민을 구속할 수 있는 사건인데 여기에 비리가 있는 법관들을 투입하는 것은 판결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사법농단에 관련된 법관들에 대한 탄핵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전현직 정치인들 재판을 맡을 수 있는 형사합의부 재판장 배당은 더욱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 임 교수는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고 있어 혐의가 확인된 법관은 국회에서 탄핵을 해야 사법 신뢰가 회복되는 상황"이라면서 "연루된 법관이 선거재판의 재판장을 맡고 있다면 국회의원들 역시 탄핵 결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일자로 사법농단에 연루돼 업무에서 배제됐던 현직 법관 7명을 재판 업무에 배치시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법원은 이들에게 사건 당사자와 접촉 가능성이 비교적 적은 신청사건이나 조정 업무, 금전과 관련된 민사사건 등을 맡겼다.
사법 행정권 남용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시스
임성근 부장판사는 부산고법에서, 이민걸 부장판사는 대구고법에서 조정총괄부장을 맡았다. 성창호 부장판사와 조의연 부장판사는 각각 서울동부지법 민사52단독과 서울북부지법 민사1단독으로 근무하게 됐다. 방창현 부장판사도 대전지법 신청단독부로 발령됐다. 심상철 부장판사는 소액심판과 즉결심판 등 소규모 사건을 다루는 성남지원 광주시법원으로 돌아갔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사법정책연구원으로 직접적인 재판 업무를 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여기에 대해 "사법 연구 기간이 이미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형사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경우에 따라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소는 되지 않았지만 대법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김민수 부장판사는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민사1단독을, 박상언 부장판사는 창원지법에서 민사21단독을 맡고 있다. 단독사건은 소송물가액이 2억원 이하인 사건이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하기에 앞서 필요한 문건을 작성하거나 상고법원 설치에 비판적인 판사를 뒷조사한 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받고 각각 감봉 4개월과 5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법관들이) 민사사건을 맡는 경우도 국민으로선 납득이 안 되긴 마찬가지"라면서 "법관들이 합당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재판을 한다면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수긍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