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5대 은행의 8월 한 달간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4조원이나 불어나며 역대 최대 증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저금리로 여·수신 금리가 낮아지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탓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생활자금 공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일단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2일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이들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24조2747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4조705억원(3.2%) 불어난 유례 없는 증가세다. 당시 사상 최대로 파악됐던 지난 6월과 7월의 각각 증가폭 2조8374억원, 2조6810억원과 비교해도 1조원 이상 많다.
국민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이 지난달 1조631억원 급증해 증가량이 가장 컸다. 이 기간 신한은행은 1조520억원이 늘어 집계를 시작한 2007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액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7199억원, 하나은행 6095억원, 농협은행 6310억원 신용대출 잔액이 늘었다.
신용대출 잔액이 급증한 것은 저금리 영향에 따른 개인들의 투자심리 변화와 규제에 따른 은행들의 이윤추구 목적이 맞물린 결과로 파악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들의 투자자금이 주식매매자금, 부동산으로 몰렸다"면서 "당장 현금을 가지고 있는 개인뿐만 아니더라도 빚을 내서라도 흐름을 타려는 움직임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부터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는 연 0%로 형성됐다. 반면 주식시장은 활황에 더해 대형 IPO 이슈까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열기를 더했다. 국내 증권 계좌에 입금된 투자자예탁금은 전날 기준 60조원을 넘어섰다. 연초 27조원 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이 기간 부동산 대책이 연이어 나오면서 30대 이하의 '부동산 막차' 인식도 강해졌다. 한국은행이 전달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는 125로 2018년 9월(128)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지수가 100보다 클수록 1년 뒤 집값이 오른다고 보는 가구가 반대보다 많다는 의미다.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신용대출을 우회로로 삼는 경우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시장금리 하락으로 조달금리 부담이 줄어든 은행들은 주요 신용대출 상품 금리를 1%대까지 낮추면서 대출 수요에 호응할 수 있었다. 전세자금대출, 주택구매자금 외에는 대출 용처가 크게 문제되지 않기에 사실상 은행들은 이자만 제때 받을 수 있다면 대출 집행에 큰 부담이 없다. 작년부터 은행들이 연이어 비대면 대출상품 출시하면서 대출 접근성도 크게 높아졌다.
정부도 신용대출 공급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신용대출에 대해 금융권이 각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생활안정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는 복합적인 판단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점검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짐으로 전달 14일 이후에만 신용대출 잔액이 2조8000억원 불어나는 등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영끌'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8월 신용대출 잔액 증가가 4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가운데 서울 중구 시중은행 대출 창구에서 대출 희망자가 서류 등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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