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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은 총수의 ‘전횡’ 막는 것”
박헌용 더나은IT세상 포럼 의장, 사외이사 후보 추천 독립적인 기구 필요
국내 IT산업 생태계 무너져…선택과 집중 통한 산업정책 요구돼
2018-07-29 15:40:32 2018-07-29 17:45:04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일부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폭로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박헌용 더나은IT세상 포럼 의장은 이와 관련, “총수기업이나 총수가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자의 ‘전횡’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전횡을 어떻게 막느냐가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1년생으로 강원 북평고등학교와 강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의장은 1987년 KT에 입사해 2016년까지 20년여간 KT그룹에 몸담으며 민영화와 구조조정, 초고속인터넷 사업 진출과 인터넷TV(IPTV) 법제화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에 직접 참여했다. 전략기획실 기업전략담당, CR협력실장 등과 KT 계열사인 KT엠하우스 사장, KT파워텔 사장, KT그룹 희망나눔재단 이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KT를 떠나 경기콘텐츠진흥원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부터 더나은IT세상 포럼을 이끌며 기업 지배구조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IT산업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
 
박헌용 더나은IT세상 포럼 의장이 4차 산업혁명 시대 IT산업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더나은IT세상
 
‘더나은IT세상’ 포럼은 어떻게 출범하게 됐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IT산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이를 토대로 바르고 투명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4월 말 설립했다. 처음에는 뜻을 같이 하는 전·현직 IT 종사자들이 중심이 됐는데, 지금은 산업계뿐 아니라 관련 학계와 연구기관, 법조계 출신 등 3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5월30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과 참여연대 등이 함께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토론회’가 사실상 첫 출발인 셈이다. 현재 국민복지통신, 산업생태계 혁신, 지배구조와 경영민주화 3개 위원회가 있는데, 회원들 간에 활발하게 논의를 진행 중이다. 활동 범위를 남북 통신협력이나 ICT산업 생태계 활성화 등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로 확대하자는 의견들이 많다.
 
지배구조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이유는?
지난 3월 국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한꺼번에 열리면서 최고경영자(CEO)나 이사 선임과 연임 이슈, 정관 변경 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한진그룹 등 재벌 일가의 갑질 문제가 터졌고, 삼성물산 합병비율 적정성 여부, 현대자동차 지주사 전환 논란도 뜨거웠다. 이중에는 소유출자구조(ownership structure)와 함께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구조, 그러니까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관련 내용도 쟁점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누구 잘못이냐, 누가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놓고 논란만 무성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실제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나아간 대안을 제시해보자는 생각에서 토론회를 하게 됐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해법과 보완 방안이 있다면?
얼마 전에 국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지배구조 개선 내용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49건 발의됐고, 무려 686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아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은 느끼는데, 실제 추진할 동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정부 주도로 관련 의견들을 한꺼번에 조정해 입법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도 입법 제안을 할 수 있으니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든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든 범정부 차원에서 기업지배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목표 시한을 정해서 완료하면 어떨까. 이번에 재벌 총수나 회장들의 전횡을 막을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배구조에서 핵심은 CEO나 지배주주의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견제할 사외이사 역할인데, 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블랙박스다. 특정 지배주주나 CEO가 사외이사를 내정하고, 사외이사가 다시 CEO를 뽑는 폐쇄형 순환구조인 셈이다. 기업 활동을 정상적으로 감시하고 감독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사외이사 후보를 물색하고 심사해서 추천하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이해관계자들,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 대표나 직원 대표, 고객 대표 등도 참여하고 이 기구에서 3배수 정도의 후보를 추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KT나 포스코 등 ‘주인 없는 기업’에게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다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삼성, 현대차, CJ 등등 주인 있는 기업들은 잘하고 있나. 지배주주가 있으면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지배주주가 없으면 CEO의 전횡을 막지 못하는 지배구조 문제가 생긴다. 일부에서 무책임하게 ‘주인을 찾아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 주인이나 회장이 전횡을 하면 결국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국가 경제적으로도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런 문제가 일부나마 우리 눈앞에 드러난 게 대한항공 사태 아닌가.
 
지난 5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KT그룹에서 20여년 몸 담았은 것으로 안다. 현재 KT를 평가하자면?
신입사원 공채로 1987년 처음 KT와 인연을 맺었다. 입사 후에는 20여년 간 거의 전략·기획분야에서 근무했고, 2008년부터 KT 계열사 대표이사 등을 맡으며 후회 없이 일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KT에 빚이 있는 셈이다. 줄곧 내부인으로 있다가 이제 KT를 바깥에서 바라볼 때는 아쉬움이나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것만으로도 KT 출신 모두가 충분히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사실 그런 걸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포럼도 만들고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자는 생각을 했다.
동의할지 모르지만, KT는 거듭 혁신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전화 회사에서 출발해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 회사로, 또 IPTV 회사로 끊임없이 변신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로는 아쉽게도 혁신이 실종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기존 사업에서 점유율이나 매출 등을 따지는 등수 경쟁에 매몰되거나, 인수합병(M&A)으로 재벌그룹을 흉내 내면서 KT 핵심역량과 거리가 먼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 KT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었으니 경영성과가 좋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KT는 이미 2001년을 즈음해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그럼 KT가 처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은?
KT는 국가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빨리 제자리를 찾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과 특검 수사 후에도 9개월씩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수많은 임원이 수사대상인데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하겠나. 지금은 회사나 임직원들이 기존 관성대로 회사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KT도 어려우니 수사도 빨리 종결하고, 경영진도 가능한 한 빨리 입장을 정리해 회사에 새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IT산업 생태계를 강조했다.
우리 산업의 IT 생태계가 무너졌다고 판단한다. 승자독식 구조로, 생태계 자체의 건강성과 균형이 많이 허물어진 상태다. 흔히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4차 산업혁명의 요체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우리가 그런 기술들을 얼마나 잘 활용해서 생산현장과 일상생활을 더 낫게 만드느냐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기술과 제어계측 기술을 활용한 로봇으로 생산공장을 혁신한 독일의 스마트 팩토리가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해야 할 일은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한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디지털(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기존 산업 영역들, 가령 공장이나 농장, 마을과 도시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 분야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구체적인 산업정책이라든지 가이드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일본은 일본재흥전략과 소사이어티 5.0, 독일은 스마트 팩토리 정책으로 국가적인 역량을 결집시키고 있다. 우리는 시장에 맡겨 방임해도 잘 굴러가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산업이 경제적으로 파급력이 얼마나 클지 예측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해당 정부부처가 강력히 추진토록 해야 결실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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