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조양호 한진 회장이 28일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검찰에 모든 걸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는 싸늘하다.
조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촉발된 한진 사태는 조 회장 일가 전체를 덮쳤다. 감췄던 비리와 횡포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부인 이명희씨와 두 딸(조현아·현민) 모두 당국에 소환됐고, 마침내 조 회장마저 검찰에 불려나왔다. 분노한 국민들이 조 회장 일가의 퇴진과 국적 항공사 반납까지 요구할 만큼 한진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했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한진 안팎에서는 조 회장의 거듭된 악수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했다. 앞서 서울국세청은 지난 4월 조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등 5남매를 검찰에 고발했다. 부친인 고 조중훈 회장의 해외재산 상속 과정에서 500억원대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조 회장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와 통행세 등을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포착했다. 횡령·배임 규모는 200억원대로 전해진다. 자택공사 경비 횡령 의혹도 수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을 비롯한 재계에서는 "거듭된 악수가 사태를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4월 조 전 전무가 광고사 직원에 물을 뿌린 일이 보도되자, 그룹 내에서는 그를 사퇴시키고 피해자에 사과할 것을 제언했다. 조 회장은 이사회에서 딸을 감싸며 이를 거부했다. 2014년 '땅콩회항' 사태까지 회자되면서 두 딸의 횡포에 대한 직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급기야 대한항공을 이용한 명품 밀반입 의혹 등 밀수 혐의로까지 치달았다. 화약고였던 이명희씨의 폭행과 폭언도 동영상 등을 통해 민낯을 드러냈다. 뒤늦게 두 딸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수습 단계를 지났다. 급기야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마저 부정 편입학 의혹으로 교육부 조사 대상이 됐다.
한진 내부에서는 '조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흘러나온다. 조 회장이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라도 그룹 회장 직에서 퇴진해야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미 수습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한진의 기업가치와 이미지가 심각히 훼손됐는데, 경영권 박탈까지 안 가려면 조 회장이 퇴진을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조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한 발 물러서야 할 시점이 됐다"며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그는 "당국이 총동원되고 여론은 비난으로 가득하다"며 "아들 조 사장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조 회장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 같은 제언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재벌 문제 전문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재벌가 갑질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재벌의 위법행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재벌의 비리와 일탈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사회 기류는 조 회장의 검찰 출두 당일 피켓 시위로 이어졌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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