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촛불집회, 국민이 주인임을 선언한 역사적 사건"
"민심은 천심…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를 수 없어"
"정치인·관료들, 국민이 지배 대상이라는 생각 버려야"
2016-12-12 06:00:00 2016-12-12 08:57:0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이번 일련의 집회는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국민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준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누적인원 750만명이라는 경이로운 촛불집회의 의미를 오영중(47·사법연수원 39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규정했다. 오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부터 현재까지 6년간 서울변호사회 인권이사와 인권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감시했다. 변호사 3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서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촛불을 높이 든 것도 그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인권 퇴보기'인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국민과 함께 해 온 오 위원장을 만나 완벽히 진화한 한국의 집회 문화를 점검했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사진/최기철 기자
 
누적인원 750만명, 경이로운 숫자다.
 
말이 그렇지 100만명, 200만명 모이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다. 그동안 집회나 국민운동은 정치인들이나 국민단체, 또는 소위 엘리트들이 리드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민들이 앞서서 정치인들이나 국민단체, 엘리트들을 몰고 갔다. "국민의 생각은 이것이다"라는 것을 직접 보여줬다. 그것이 이번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게다가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는 국민들의 행동이 매우 평화롭게 진행됐다. 우리나라 집회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만큼 집회도 거기에 대응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집회 참여인원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의미가 크다. 집회라는 것이 참 힘들다. 춥고, 배고프고, 용변 보는 것도 쉽지 않다. 피로도가 바로 올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TV를 보다가 집회를 생중계 하니까 ‘나도 나가봐야겠다. 내일이다’. 이런 의식을 갖고 참여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못 가더라도 누가 대신 나와 주길 바라고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는 그런 열망이 컸던 것 같다. 일반적 집회보다 더 확장해서 ‘민주주의의 회복’, ‘국민주권 회복’이라는 거대한 목표 의식이 뚜렷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다. 그 목표가 이뤄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할 때 까지 이런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본다. 일회성은 아니다. 기존 집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 국민 입장에서는 무시당했다는 모욕감이 컸던 것 같다. 특히 학사농단 등의 사건은 국민 마음속 깊이 있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 것 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인식이 연대된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보다 오프라인 활동이 왕성한 것도 주목된다.
 
온라인은 익명이다. 내가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 꺼려지고, 직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번거롭고 해서 온라인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정 반대다. '내가 직접 표현해야 한다. 이것은 온라인으로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했다.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온라인은 더 이상 모임의 장이 아니었고 모임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됐다. 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회 참여 연령대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그동안 집회·시위 하면 과격함, 폭력, 최루탄, 경찰, 체포, 처벌을 떠 올렸다. 그것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런데 이번 집회는 완전히 발상이 다르다. ‘우리가족이 다 나가도 공권력으로부터 탄압받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인식이 묵시적으로 확장됐다.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느끼는 모욕감, 민주주의의 붕괴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우리 아이들도 피해자다. 지금 이것을 바꿔놓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똑같이 당한다. 유모차를 끌고라도 나가야 한다’ 이런 절박함이 상당히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는 동문회도 광화문에서 한 중장년들도 있다. 이런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도 작용한 것 같다. 이른바 ‘7080’들이다. 그들이 ‘군사독재시절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겨우 진전시켜놨는데, 그 딸이 다시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되돌려 놨다. 이것은 참을 수 없다’ 하는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참여인원 연령의 스펙트럼을 넓혀 놨다. 지금 상황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현실화 된 상황이다. 그 민심은 어린 아이나 노인이나 다 같다. 
 
이른바 ‘교복부대’ 활동이 두드러졌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단 어른들이 학생들을 잘 모른다. 3~4세 어린 아이들도 좋고 나쁨은 다 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정도 되면 세상을 어느 정도 안다. 고등학생들이 저를 인터뷰 하러 온 적도 있었지만 질문을 들어보면 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상당히 높다. 다만 입시에 대한 부담과 ‘미성년자는 안 된다’는 식으로 어른들이 눌러놓은 것이다. 학생들도 사회 부조리에 대해 다 알고 있다. 또 그에 대한 의사를 언제든 표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과 같은 상황은 초등학생이든 중고등학생이든 표현할 수 있는,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배후가 있다는 주장은 잘못 짚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헌법과 법치주의 면에서 매우 중요한 토론 주제이다. 학생들일수록 더욱 활발히 토론하고 논의해야 할 과제이다. 학교에서 토론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광장에 나와서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도 발언하는 과정에서 이번 학생들의 집회 참여는 어쩌면 산교육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집회문화도 ‘즐기는 집회’로 바뀌었다.
 
저도 처음에 놀랐다. 우리가 기존에 겪어 왔거나 알고 있던 집회나 시위의 범위를 넘어선 수준이다. 누가 기획하거나 플랜을 짜서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평소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극히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다양한 의사들이 정확히 일치된 현상이라고 할까.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엘리트나 활동가, 소위 앞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잘 몰랐다. 우리 국민은 원래 이런 수준이다. 정치인, 국민단체 활동가들이 선험적으로 규정지어서 '우리가 집회시위를 주도하고 국민은 따라와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뿐이지 국민들은 언제든 나와서 평화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일치단결해서 낼 수 있는 주체였다. 이번에 이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이 리더라는 것을 보여준 면도 있다. 심지어 국민들이 정치권을 컨트롤하고 있지 않나. 한국 정치인들은 이런 현상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심을 거스르면 부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심은 언제나 큰 강처럼 담담하게 흐르고 있다. 이번 집회는 우리 역사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것을 보여준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사법부 태도도 적극적이다.
 
동감한다. 예를 들어 일과시간 후인 오후 6시30분에 금지통고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어도 신청인 측에 30분쯤 뒤에 전화해서 심문이 가능한지를 물어보고 심리를 진행하는 동시에 결정문을 작성한다. 그래서 결국 집회를 가능하게 해줬다. 드라마틱한 일이다. 이런 것을 보면 법원이 얼마나 이번 집회의 성격과 중요성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재판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법부도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고, 그동안 이번 집회가 얼마나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진행됐는지를 인정한 것이다. 
 
광우병 집회·민중총궐기 대회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광우병 집회 때에도 많이 모였다. 그때는 물리적 충돌과 입건자가 많았다. 많이 모인 만큼 정부는 강력하게 막았다. ‘명박산성’이 그때 처음 나오지 않았나. 그 거대한 차벽이 주는 절망감. '너희의 의사표현을 막겠다'는 소통의 거절. 국민이 외쳐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가 국민에게 엄청난 모욕감을 줬다. 그래서 참을 수 없었던 국민들이 경찰 차벽으로 뛰어드는 등 물리적 행동이 나왔다. 작년 민중총궐기 때도 정부가 완강히 막으니까 일부 국민들이 ‘가겠다’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공권력으로부터 유발된 충돌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때도 대부분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여했고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부가 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강경대응 하면서 자극했다.
이번에는 규모가 워낙 컸고 공권력이 막지 않으면 평화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내자동 사거리에서 점점 앞으로 나가는 상황에서도 경찰이 막았지만 국민 누구도 과거와 같은 적극적인 물리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집회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근본적인 헌법상의 문제, 법치주의의 문제,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주권자가 이야기 하는 것이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보다 국민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너희들처럼 비겁하거나 법을 어기지도 않는다. 우리는 법을 지키면서 너희들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더욱 강력한 목소리와 항의를 보여준 것이다. 국민의 자존감을 보여준 거대한, 아름다운 집회다. 지식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국민들의 우월성을 보여준 집회다. 
 
사법부 판단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계속 금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찰이 집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집회를 '허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집시법상 우리는 집회를 제한할 수 있다’ 이런 인식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또 ‘식물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아직 인사권자고 어디가 뚫리면 경찰청장이 날아간다는 얘기도 있듯이 기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당히 강한 것 같다. 그러나 강제진압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다만, 채증은 적극적으로 하면서 언제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결국 집시법도 개정하고 경찰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이번 집회가 이런 논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의 집회 문화를 잘 유지·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평화시위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또 그동안 국민이 배제된 정치, 국민의 참여를 막은 정치, 관료중심의 정책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집회의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제도들도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향후 숙제가 많다. 특히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국민이 지배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국민사회가 높은 수준의 욕구와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정치인들도 배우고 제대로 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기존의 정치인들이 예전의 생각으로 정치를 하게 되면 진화된 민주주의의 열망, 이것이 퇴보하게 된다. 정치와 문화, 제도, 법도 동일하게 진화해야 하는데 진화하지 못하면 또 옛날로 돌아가게 된다. 이 고민을 국회와 정부, 사회 전반에 걸쳐 진지하게 해야 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제7차 범국민 촛불집회에 참여한 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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